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노래의 날개 위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노래의 날개 위에

입력
2010.12.15 12:04
0 0

"이미자가 죽었대!" 저녁을 먹다가 딸아이의 호들갑스런 전언에 남편과 나는 거의 동시에 숟가락을 놓았다. 진짜? 어쩌다가? 우리가 모르는 지병이라도 있었대? 질문을 쏟아내며 대답을 기다릴 겨를도 없이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던 나는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알고 보니 의 원로가수 백설희의 타계 소식이었다.

아이한테는 익숙지 않았을 노래에 담긴 세월, 누구누구가 리메이크했다는 기사는 장황했다. 그 중 이미자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하긴 아이한테야 백설희나 이미자나.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그렇게라도 관심을 보여주니 고맙달 밖에. 그 후 한동안 나는 한영애의 를 끼고 살았고, 아이는 가끔 김윤아의 를 들었다. '얄궂은 그 노래에' 교토의 봄날은 갔다.

노래 위의 세대 차이는 노래방에서도 어김없다. 를 부를 때 송창식을 누르면 쉰세대, 디바를 누르면 신세대, 에 이문세를 선택하면 쉰세대, 빅뱅을 선택하면 신세대란다. 아닌 척 억울한 척 하기도 민망한 진짜 쉰세대가 되고부터는 대책 없는 젊음의 허세 앞에 주눅이 들 때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참이었다. 넌 늙어봤냐? 난 젊어 봤다!

그런데 쉰세대에게도 신나는 일이 생겼다. 슈퍼스타 K2가 일으킨 노래 바람 덕분이다. 노래의 날개 위에는 승자 패자, 신세대 쉰세대가 따로 없었다.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노래에 빠져있었다. ... 신세대가 리메이크한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주 울컥했다. 딸아이는 장재인과 김지수, 허각과 존박, 그들의 열정과 꿈같은 드라마에 열광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노래 속에 묻혀있는 나의 그리운 날의 기억들 때문에 행복했다. 그 여운도 길었다.

엄마한테도 청춘이란 게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챘을까. 급기야 딸아이가 아르바이트한 돈을 몽땅 털어 사준 로얄석 티켓을 들고 이문세 콘서트장에 앉게 되었다. "관객의 연령대가 중후하다"고 저희끼리 키득거리던 어느 젊은이들 틈에 앉아 야광봉과 캐스터네츠를 흔들면서.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 가는 걸", "깊은 사랑 후회 없어 저 타는 붉은 노을처럼"... 만 개의 사랑과 만 개의 이별이 공연장에 물결쳤다. 너희가 젊음을, 인생을 아느냐고 노래는 물었다. 때로는 나긋나긋하게, 때로는 절규하듯. 먼 길을 돌아 온 더 이상 젊지 않은 젊음이 눈부셨다.

젊으나 늙으나, 우리는 모두 제각각 봉우리를 넘고 있는 중일 게다. 어느 산마루에는 폭풍이, 어느 산마루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있겠지.'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하라던가.(김민기 ) 노래란 숨찬 고갯마루 위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바라보는 먼 바다 같은 것이 아닐까. 내 가슴의 수많은 떨림이 먼 길을 돌아 드디어 밝은 눈으로 맞이하는 바다. 그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또 한 해의 끝자락에 섰다. 노래의 날개 위에 서울의 겨울도 가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오늘의 기억은 그리움이 되고 마침내 또 다른 고갯마루에서 바라볼 내일의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거야/그대 생각이 나면/생각난대로 내버려두듯이..."(이문세 ) 깊고 푸른 바다를 위하여, 그대여 이젠 안녕!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