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엥.'
민방위 기본법 제정(1975년) 이후 처음으로 전국 동시 민방공 특별대피훈련이 실시된 15일 오후 2시. 훈련 시작을 알리는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서울 도심 한복판 광화문 네거리 주변의 차량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버스와 택시들은 비상등을 켠 채 길 한쪽에 정차했고 거리의 시민들은 종종걸음으로 가까운 지하 대피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훈련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따라 유사상황에 대비, 국민들이 신속한 대피 요령을 익히자는 차원에서 실시됐지만 인천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형식적인 참여 탓에 반쪽 성과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민간인을 겨냥한 북한의 무차별 포격에 공포를 느낀 것도 잠시인 듯 실전훈련에 임하는 상당수 시민들의 행동과 의식에는 "이런 거 왜 하느냐"는 짜증과 귀찮음이 묻어있었다. 마땅한 대피소가 없어 허둥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차량 운전자나 버스 승객들은 하차해 대피소로 이동하는 게 훈련지침. 추운 날씨 탓인지 이를 따르지 않은 시민이 태반이었다. 덕수궁 앞 지하대피소 앞에 있던 한 경찰관은 "차에서 내리라고까지 하긴 힘들지 않겠냐"고 말했다. 심지어 상가가 밀집한 명동은 민방공 훈련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듯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이었다.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앞에도 훈련 시간 내내 50여 명의 시민이 돌아다녔다. 곳곳에서 "통제에 따라달라"는 요원들과 시민들의 실랑이도 벌어졌다. 김모(27ㆍ여)씨는 "민방위 훈련을 갑자기 왜 하는 거냐. 이런 게 더 불안하게 하는 것 아니냐"고 불평했고 최모(31)씨는 "사업 미팅 때문에 꼭 가야 하는데 시대가 어느 때인데 구청장이 나오니 통제에 따라라 마라 하냐"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기업 등 대형 건물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역삼동에 있는 직장인 박모(38)씨는 "회사 건물이 45층인데 지하로 대피하라는 사내방송조차 없었다"며 "45층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 계단으로 지하에 내려가겠냐"고 되물었다.
지방의 경우 마땅한 대피시설이 없어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별도 대피시설이 없는 수원 조원중의 경우 학생들이 학교 건물 뒤편 야외공연장으로 이동했고 대전 탄방중ㆍ둔산중 학생들은 운동장 스탠드로 대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훈련에 참가한 경찰과 공무원들의 태도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공습 경보가 울린 지 한참이 지나도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자 한 경찰관은 "조만간 청장이 헬기로 볼 시간이 됐는데…"라며 눈치를 봤다.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의 공무원들도 건성으로 참여하긴 마찬가지였다. 공습경보가 내려져 지하 1층 복도로 대피하라는 지시에도 일부 공무원은 복도에서 서성거리거나 계단에서 잡담을 나누는 등 진지함이나 긴박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편, 연평도를 마주보고 있는 인천에서는 높아진 불안감이 반영된 듯 순조롭게 훈련이 진행돼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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