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1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재차 비판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박의춘 북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회담에 대한 언론 발표문에서 “인명 피해를 초래한 남한 영토에 대한 포격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발표문은 또 “북한이 영변 지역에 우라늄 농축 시설을 구축했다는 소식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와 1874호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발표문에서 “일련의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증폭되고 있는 한반도의 군사ㆍ정치적 긴장 고조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면서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겨냥했지만 북한 비판에 더 비중을 두었다.
북한을 비판한 러시아 외무부의 발표문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성명은 포격 도발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북한 스스로 군사적 공격 사실을 인정한 만큼 회담 상대인 북한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안함 사태 때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며 북한 비판에 소극적이었던 태도와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앞서 연평도 포격 당일인 지난달 23일 북한의 공격을 비난하는 공식 입장을 신속히 내놨고, 이틀 뒤인 25일에도 “(남한이) 사격훈련을 하는 것과 주민들의 거주 지역인 육지에 (북한이) 포격을 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러시아는 연평도 포격 국면에서 북한보다는 한국의 입장을 거들어주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천안함 사태와 달리 민간인을 살상한 위법 행위가 명백히 드러나 북한을 두둔할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잇따라 대북 규탄 성명을 내놓고 있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도 고려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입장 변화 배경을 천안함 사태 이후 ‘한ㆍ미ㆍ일 대 북ㆍ중’ 대결 구도로 굳어지고 있는 동북아 외교 전선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흘러갔던 천안함 사태 논의 과정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며 “연평도 포격 국면에서도 여전히 북한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중국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실리 외교’ 전략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는 1990년 한ㆍ소 수교 이후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시도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한반도를 관통하는 천연가스 수송관을 건설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향후 20년간 1,0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는 만큼 한국과의 경제 협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패권 행사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도 갖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서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경우에는 러시아는 중국과 연대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남북한 외교전도 한층 가열되고 있다. 14일 러시아에 도착한 우리측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러시아의 대북 압박을 요청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알려졌다. 박의춘 북한 외무상도 15일까지 러시아에 머물 예정이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