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리금융에 넣은 공적자금은 총 12조8,000억원. 이중 5조3,000억원을 회수했으니, 7조5,000억원이 남아 있다. 그나마 이건 원금이고, 지난 10여년의 이자까지 계산하면 10조원 이상은 회수해야 본전이 된다.
만약 지금 우리금융을 민영화한다면, 정부가 원금 이상은 건지기 힘든 구조다. 시골장터의 흥정이든, 초대형 인수합병(M&A)이든, 경매란 본래 원매자가 몰리고 판이 커져야 값도 오르는 법. 그러나 하나금융의 이탈로 우리금융 혼자만 남은 현 상태에서, 정부가 원하는 가격을 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금융 민영화가 무산된 것도 결국은 이 때문이다. 파는 쪽(정부)는 더 받겠다고 하고, 사겠다는 쪽(우리금융)은 그렇게는 못 주겠다고 하니, 딜이 깨질 수 밖에. 이런 상황에선 좀 더 절박한 쪽이 양보하게 되는데, 딜이 깨졌다는 것은 양쪽 모두 급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먼저 나선 쪽은 정부였다. 이미 몇 차례 민영화 시한을 넘긴 터여서, 당국자들도 "이번엔 꼭 판다"고 단언했을 정도. 그렇다면 매각무산의 일차적 책임은 높은 가격을 고집한 정부 쪽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만약 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기지 못해 공적자금 원금조차 제대로 건지지 못한다면, 정부는 큰 곤경에 처할 것이다. 당장 헐값ㆍ특혜 매각 시비가 일 것이고, 여론이 나빠지면 국회 청문회에 이어 감사원이 나서고, 더 심해지면 검찰까지 등장할 수 있다. '외환은행 헐값매각'의 기억이 또렷한 상황에서 과연 어느 공무원이 민영화를 강행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정이 그렇다 해도, 이게 정부가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즉 '본전'만을 고집한다면 우리금융 민영화는 영영 불가능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나중에 주가가 더 오른 뒤 팔면 된다" "우리금융 이외의 인수후보자가 나와서 유효경쟁환경이 만들어진 뒤 매각하면 된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까. 우리금융이 계속 정부은행으로 남아 있는데, 시시콜콜 경영에 간섭하는데, 3년마다 최고경영진을 갈아치우고 후임자를 정치적으로 임명하는데, 과연 주가가 더 오를 수 있을 까. 외국자본은 국부유출 때문에 안되고, 산업자본은 사금고 우려 때문에 안되고, 결국 KB금융 하나만을 바라 보며 유효경쟁을 기다리자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우리금융을 하루라도 빨리 파는 게, 그래서 우리금융이 시장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자율적으로 경영진을 뽑을 수 있게 해주는 게, 은행산업 발전을 위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다. 설령 공적자금 회수율이 좀 떨어지더라도, 이로 인해 비판을 받더라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게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변양호 신드롬'이다. '내가 있는 동안에는 민감한 결정은 하지 않겠다'는 '님트(NIMT=Not In My Term)'현상의 극치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할 까. 참 짜증스럽고 답답하게 만드는 정부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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