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이 잘됐다고 생각할 사람이 한나라당 안에 어디 있겠느냐."
한나라당 친박계의 한 핵심 의원은 15일 '박근혜 전 대표가 이번 예산 파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에둘러 이렇게 답했다.
예산 부실 심사와 강행 처리를 둘러싼 파문으로 여권 전체가 일주일째 요동치고 있지만 박 전 대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유추해 읽을 수 있다.
우선 박 전 대표의 측근들이 앞장서 이번 사태를 비판하고 있음을 주목해 봐야 한다. 친박계 이혜훈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예산 처리 과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데에는 여야의 생각이 비슷할 것 같다"며 "미숙했던 부분들이 속속 드러나는 걸로 보이기 때문에 이대로 강행하는 건 어렵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아랍에미리트(UAE) 파병안에 대해서도 "한 번도 논의하지 않고 단독강행 처리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경제 참모 역할을 맡고 있는 이한구 의원도 전날 라디오에 출연, "설익은 예산의 변칙 처리, 실세 지역구에 토목 예산을 챙기는 내용으로 예산이 처리됐다는 데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며 "2012년 총선 참패와 이명박정부 레임덕이라는 위기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생각이 곧 박 전 대표의 생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생각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크다. 박 전 대표가 8일 여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도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단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이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예산안의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박 전 대표도 잘 알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직접 비판은 이 대통령에게 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치고 곧장 여권의 내홍 사태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8ㆍ21회동'이후 만들어진 당내 데탕트가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 박 전 대표로선 원치 않는 상황일 것이다. 한 당직자는 "박 전 대표가 이번엔 직접 말하지 않고 측근의 입을 빌려 심경을 전달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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