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이 발표된 지난 8일 이후 지인과 수험생들로부터 꽤 많은 이메일을 받았다. 수능 응시생 자녀를 둔 일부 지인은 약간 흥분한 어조로 직접 전화를 해대기도 했다. 내용은 대충 비슷했다. 입시 당국, 찍어서 말하자면 교육부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싸잡아 비난하는 목소리였다. 잠시 옮겨보겠다. "정부가 수험생들에게 이런 사기극을 벌여도 되는 건가요", "재수할 생각이지만, 내년엔 어떻게 수능을 대비해야할지 막막해요.", "EBS 교재 문항과 비슷한 문제는 안낼거라는 학원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정시 지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이 고민됐다. 보낸 사람의 절박함을 감안해 위로성 멘트라도 날려줘야하는게 맞지만, 그만뒀다. 하느님도 어쩔 도리가 없는 수능 성적표를 받아든 이상 앞으로 진행될 대입시에 지원할지, 아니면 재수를 선택할지, 이도저도 아니면 유학을 떠날지, 이 모든 결정이 수험생 몫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왠지 찜찜했다. 그래서 이 기명 칼럼 란(欄)을 통해 조목조목 올해 수능을 따져보기로 했다.
올해 수능은 출발부터 불안했다. 이명박 정부가 내건 사교육비 절감 프로젝트에 딴지를 거는 국민은 없을 터이지만, 수능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단 한가지 목적에서 제시한 게 '수능-EBS 수능교재 70% 직접 연계'였으나, 무모했다. '위험한 도박'이었다. 교육 수장의 입을 통해 마치 수험생들에게 선심(善心)이라도 쓰듯 연계 계획을 공개적으로 발표했지만 정작 이런 방침뒤에 숨어있는 변수에 대해선 함구했다. EBS 수능 강의에서 쓰는 개념과 원리를 변형한 문항이'수능 연계의 실체'이자, 본수능의 최대 변수임을 알리지 않았다. 이 변수가 수험생들을 농락한 것이다. 교육부는 처음부터 이랬어야 옳았다. "EBS 70% 연계는 문항 자체가 비슷하거나 일부 변형된 문제를 내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개념을 활용해 변형된 문항이 중심이 될 것임을 숙지해야합니다."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은 이런 경고를 끝내 하지 않았다. 도리어 '수능의 마지막 전지훈련'으로 일컬어지는 9월 모의수능 이후엔 거짓말을 했다. "올해 수능은 작년처럼 평이한 수준으로 내겠다"고. 9월 모의수능 결과. 수리 '가'형이 어렵게 나오고 다른 일부 영역도 까다롭게 나오면서 수험생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허공에 대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수능 이후는 어떤가. 교육부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이 정도로 입시판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놓았다면 적어도 장관이 나서 입장 표명 따위는 했어야 옳았다. 수능 성적 발표 당일 교육과정평가원장을 내세워 "EBS 문제풀이에 효과가 없었고, 내년엔 수능이 어렵지 않게 출제방향을 전환하겠다"고 한 것으로 사면(赦免)받을 생각을 했다면, 문책 대상이다. 실패한 수능 정책을 진두지휘한 교육부는 숨어 있어선 안 된다.
수능이 변별력을 갖춰야하고 난이도 역시 일정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라고 본다. 척박한 대입 전형 토양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백번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국민 앞에 거짓 입시정책을 발표하고, 뻔히 후유증이 예상되는데도 밀어붙인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판단이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 수능 한달 전까지만해도 정설처럼 굳어졌던 '평이한 수능' 원칙이 깨진 경위다. 교육부가 평가원에 어려운 수능을 요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능 문제 출제진의 반란(反亂)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망가진 수능 만큼 의문도 꼬리를 물고 있다. 감사원이 수능 잡음을 감사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지켜볼 일이다.
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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