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40.1%(TNmS)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SBS 월화드라마 ‘자이언트’. 1960~80년대 강남 개발사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강모(이범수) 못지않게 주목받은 이는 군인 출신으로 중앙정보부를 거쳐 국회에까지 진출한 욕망의 화신 조필연이다.
그는 “정의는 인생의 패배자들이 들어놓은 보험”이며 “천벌은 승리를 시기하는 놈들이나 지껄이는 말”이라고 뇌까린다. 성공 앞엔 사치에 불과한 사랑 타령을 늘어놓는 아들에게 가차없이 의자를 내려치는가 하면, 파멸의 순간까지도 “이 나라 발전을 위해서 뼈를 깎고 피를 말려 강남 땅을 이뤄놨다”고 큰소리친다. 배우 정보석(48)은 이 지독한 악역을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으로 표현해 내 극의 재미를 한껏 살렸다.
11일 오후 서울 논현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성공이 최우선 가치였던 시절이었기에 조필연을 악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197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직접 보고 겪은 인물이라 캐릭터를 형상화할 때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고, 당시의 저는 그들을 불의라고 생각하며 싸웠던 입장이어서 조필연의 이미지를 더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고 했다.
정보석은 조필연 최고의 명장면으로 마지막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재춘(윤용현)을 돌아보며 혼잣말을 하는 장면을 꼽았다. “재춘이하고 얘기했어요. 악당의 죽음에 눈물이 날 수 있게 해보자고. 이 장면이 필연이 평생 수족처럼 부렸던 재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필연으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남을 먼저 생각했던 순간이었죠.”
그는 네티즌 사이에서 연말 연기대상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일부는 그의 수상을 가정하고 트위터로 수상소감 아이디어를 건네기도 한다. “조필연 말투로 ‘재춘아, 내가 강모 이겼다’라고 말해달라는 식인데, 참 재미있어요.” 하지만 그는 “이만큼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미 이룰 건 다 이뤘다”고 했다. 그는 포털 사이트 등에서 실시한 설문에서 올해 최고의 드라마 연기자, ‘자이언트’ 최고의 연기자 등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정보석은 전작과 대비되는 극단의 연기 변신으로도 눈길을 모았다. 전작인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지붕킥)에서 그가 맡은 역은 무능한 구박덩어리 주얼리 정. 데뷔 25년 차로 “이제 겨우 배우로서 청년기인데 벌써 이미지가 고착되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는 그에게 ‘지붕킥’은 기회였다. “‘지붕킥’ 제작이 늦어지면서 캐스팅이 취소될까 봐 제가 더 매달렸어요. 그러면서 이 작품으로 어떤 반응을 얻든 빨리 배우 정보석으로 돌아와야한다고 생각했?. 가장 좋은 방법은 강한 캐릭터, 가급적 악역을 맡는 거였어요.”
그를 배우의 길로 이끈 것은 “운명 반, 오기 반”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를 하다 부상을 당해 그만둔 뒤 방황 끝에 잡은 책이 셰익스피어 전집. “운명 같았어요. 놀다 놀다 더 놀게 없어 잡은 책이 인생을 바꿔놨죠.” 그는 “가출할 때도 4권짜리 이 전집만 들고 나갔다가 꼭 다시 끼고 들어왔고, 지금도 가보 1호”라고 했다.
그렇게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지만 연기를 못해 고육지책으로 연출을 전공했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작품 무대에 주인공으로 섰다가 망신만 당했다. “어찌됐든 처음으로 무대 맛을 제대로 본거죠. 뭔가 보여주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그렇게 시작한 길이라 그에겐 매 작품이 살얼음판이었고 외줄타기였다. 배우로서 행복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2005년 ‘신돈’에서 공민왕을 연기할 무렵에야 촬영을 즐기게 됐다”면서 “근래에는 재미가 붙었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큐빅같이 평범한 주얼리 정에서 다이아몬드처럼 화려한 조필연으로 분했던 그는 이제 MBC 일일드라마 ‘폭풍의 연인’에서 자유분방한 재벌그룹 회장 유대권을 통해 사파이어 같은 매력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게 소원이자 목표입니다. 늘 환영 받는 배우가 되려면 발전해야죠. 새롭고 또 새롭게.”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