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으로 스크린은 열렸고, 눅눅한 음악이 귓전을 적셨다. 헤르미온느(엠마 왓슨)가 자신과 행복한 한때를 보냈던 부모의 기억을 지운 뒤 집을 나서는 도입부 장면은 음산한 분위기에 검은 정서를 덧칠했다. 어린이를 위한, 밝고 맑은 ‘해리 포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새천년의 10년을 관통한 장수 시리즈 ‘해리 포터’의 7편이자 마지막 이야기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가 15일 국내 개봉한다(2부는 내년 여름 선보인다). 부모들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자녀 손을 잡고 극장을 찾기엔 썩 내키지 않을 정도로 이 영화의 정서는 부쩍 어른스러워졌다. 동화 같은 느낌의 판타지보단 공포나 스릴러 판타지라 할 수 있다. “애들이나 보는 영화”라는 오래된 폄하는 이제 가당치 않을 듯하다.
‘해리 포터’는 여타 시리즈 영화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주인공의 성장과 함께 이야기도 조금씩 신장을 키웠다. 해리 포터 역의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2001년 첫 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출연할 당시 나이는 열 두 살. 소년은 일곱 번 해리를 연기하며 스물 한 살 청년이 됐다. 그 사이 래드클리프는 지나친 스트레스 탓에 담배를 입에 물고 산다는 소문과 함께 흡연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돼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통을 해리와 함께 치른 셈이다. 철모를 열 한 살 소년에서 연인 지니(보니 라이트)와 키스를 나눌 나이가 된 해리의 모습은 스크린 밖 래드클리프와 자연스레 포개진다.
영화의 분위기도 한없이 화사한 색채에서 칙칙하게 변색돼 왔다. 신비하고 즐겁기만 한 마법의 세계는 서서히 공포와 비탄과 상실이 가득한 공간으로 변해 왔다. 가족영화 ‘나 홀로 집에’로 이름 높은 크리스 콜럼버스의 연출로 출발했다가 어두운 기운이 스크린에 스며들기 시작한 5편 ‘해리 포터와 불사조기사단’부터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예이츠는 영국의 인기 TV시리즈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로 권력과 자본의 음습한 부당거래를 들춰내며 명성을 얻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조금씩 불의를 깨닫게 되고 이에 맞설지, 굴복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다가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해리 포터’는 말하는 듯하다.
배우와 캐릭터와 이야기의 동반성장을 10년 동안 다룬다는 점만으로도 ‘해리 포터’는 전대미문의 성장영화 시리즈다. 서서히 악의 그림자에 스크린이 침식되고, 시리즈가 종착역에 가까워지면서 ‘해리 포터’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하고 있다. 밋밋한 가족영화로만 취급한 ‘해리 포터’에 뒤늦은 갈채를 보낸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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