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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의 사진으로 본 한국현대사] <6> 리얼리즘 사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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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의 사진으로 본 한국현대사] <6> 리얼리즘 사진 활동

입력
2010.12.13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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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회 활동을 하며 리얼리즘 사진을 연구하기 위해 직업적으로 가장 유리한 곳이 신문사라 생각해 1956년 조선일보사 사진기자를 지원해 운 좋게 입사를 했다. 기자 생활과 신선회 활동을 병행하던 나는 1959년 12월 17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예술종합전’에 참가했다. 이 전시회에는 당대 각 예술분야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참여했다. 동양화에 윤영, 천경자, 서양화에 박수근, 천병권, 건축에 송정석, 이정덕, 판화에 이항성, 서예에 김윤중, 이철경, 천병옥 등이 참가했으며 사진부문에는 나를 비롯해 이형록, 손규문, 김대현, 안종칠 등이 참가해 대성황을 이뤘다.

그 전년도부터 해외 사진공모전에 관심을 돌린 나는 1958년 일본 아사히신문 국제사진전에서 ‘말과 마부’가 그리고 미국 US카메라 콘테스트에 ‘피리 부는 소년’이 입상했다. 59년에는 영국 런던타임즈에서 공모한 국제사진전에서 ‘행상’으로, 그리고 아사히신문 국제살롱에 출품한 ‘열쇠장수’가 수상의 기쁨을 안겨줬다. 제3회 파리 비엔날레 사진전에는 ‘생명’과 ‘생사’가 동시에 입선됐고 스웨덴 ‘포토’지는 한국의 대표작 5점 중 내 작품을 선정하여 소개하는 등 1959년은 국제사진전에서 많은 사진이 입상되고 선정되었다.

해외 콘테스트의 많은 수상작 중 첫 입상작인 ‘말과 마부’는 서울 서부역 앞 만리동에서 찍은 것이다. 당시에는 마차가 서울역에 내리는 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삶을 기록하고 사람을 즐겨 찍었던 나는 만리동을 비롯해 세검정과 중학동, 중림동 일대를 다니며 말과 함께 생활하는 마부들의 모습에서 인생을 발견했다. 일상에 지친 마부는 담배 한 대를 물며 세상을 응시한다. 흐트러진 작업복과 찌그러진 모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밖으로 삐져나온 런닝셔츠는 삶의 고달픔을 얘기하고 고된 노동과 채찍에 시달려 애꾸가 된 말은 숨을 허덕이며 세상과 사람을 노려보는 듯했다. 마부의 배경이 된 벽돌이, 같은 인생을 살지만 또 다른 대비가 되는 두 가지 삶을 구분했고 말의 머리부분만 보여줌으로써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가져오게 했다.

‘피리부는 소년’은 마포구 신수동, 지금의 서강대학교 자리에서 찍은 것이다. 피리를 불던 어린 사내아이 옆으로 양 두 마리가 나타났다. 혼자 서서 피리를 불던 꼬마는 이내 자리에 앉더니 계속 피리를 불며 양들의 눈치를 살핀다. 양들도 이제 제대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 같다. 가장 평화로운 사진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렸다. ‘내 노래 어때?’ 하며 피리를 불며 양들을 바라보는 꼬마, 그리고 ‘훌륭해! 너무 좋아’ 하는 듯이 아이를 바라보는 양들의 표정.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열쇠장수’는 그 시대의 표현이다. 당시 남대문시장에서 찍은 여러 사진들이 이제는 생활상을 말해 주는 추억의 역사가 됐다. 진열대가 따로 없는 남대문시장의 열쇠장수, 훈장 대신 자물쇠를 온 몸에 주렁주렁 달았다. 몸이 바로 진열대이자 좌판이다. 일상과 삶에 속박된 듯 보이지만 파이프담배를 물고 있는 그의 표정에서 세월의 연륜이 느껴진다. 비록 지금은 열쇠장수에 불과하지만 코 끝에 안경을 걸친 노장의 시선은 나름의 멋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파리비엔날레에서 입상한 ‘생사(生死)’ 역시 남대문시장에서 찍은 것이다. 내 작품들은 주로 사람과 생활을 기록했지만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가축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특히 구도와 명암의 대조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더욱 부각시켰다. 시장 상가의 목조 창틀에 늠름한 기상으로 걸터앉아 있는 커다란 몸집의 장닭, 예사롭지 않은 벼슬과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뛰놀았을지 모를 또 한 마리의 장닭이 털을 뽑혀 하얀 살을 드러낸 채 거꾸로 매달려 있다. 산 자와 죽은 자,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악착같이 또 하루를 보낸다. 한 치 앞이 죽음이지만 그걸 내다보지 못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표현한 ‘생사’는 현대성과 예술성을 표현한 야수파적 사진이라는 세상의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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