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여성 리더십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3선 의원 출신인 그는 외국계 은행에서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지만, 이후의 삶은 여성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활동에 모아졌다. 이때문에 여성계에선 그를 “우리 사회 안에 내재된 여성 차별적 장벽을 깨기 위해 투쟁해 온 산 증인”으로 평가한다. 김 회장은 “여성 리더를 육성하는 작업은 삶의 질을 향상하고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_여성 리더십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요즘 사회는 무조건적인 경쟁은 지향하고 있다고 판단해요. 사회가 바라는 것은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리더십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 발전을 위해 배려하고 봉사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여성은 기본적으로 모성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보살피고 챙기는 게 몸에 배어 있고 그것이 좀더 나은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소비자 권익을 위해 노력하고,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적 운동을 벌이고,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약한 자를 돌보고 이를 정책에 입안하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인데, 이게 곧 여성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여성만이 능사라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 동남아 일부 국가의 경우 여성이 국가 통치권자로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오히려 이런 국가는 더 부패하고 경제 또한 후진적입니다. 여성들이 네트워킹을 통해 사회 전반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성 참여의 정치 문화가 꾸준히 자리잡고 이게 입법화 과정을 거칠 때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봅니다.”
_여성단체협의회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59년에 여성 선각자들에 의해 창립됐어요. 50년이 넘게 우리나라 여성의 권익과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당시 대한여학사협회, 대한YWCA연합회, 대한어머니회 등 8개 단체가 가입했는데, 지금은 51개 정회원 단체와 11개 시도 협동회원단체 등 총 67개 여성단체가 회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우리 협의회는 이런 회원단체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우리 사회가 좀더 바른 길로 가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올해엔 협의회 소속 회원단체뿐만 아니라 비회원단체까지 합해 100여개의 여성단체들이 연합해 6ㆍ2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여성 50% 지방의회 보내기 운동’을 전개했어요. 이에 힘입어 기초의회의 경우 20%를 넘겼고, 광역의회도 15% 가량 여성의원이 당선됐어요. 올해엔 ‘탄소 1톤 줄이기 운동’을 통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적극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_한국일보가 지난달 29, 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세계여성리더십컨퍼런스’의 세션에 모두 참석했는데, 평가가 궁금합니다.
“우선 컨퍼런스 개최 시기가 아주 적절했다고 봐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지난달 초 서울에 개최돼 국가적 자긍심이 높아졌고, 세계적으로 여성 리더십이 화두로 등장한 시점에서 열린 것이라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특히 만족스러운 것은 컨퍼런스 연사들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이었고, 이들이 직접 사례와 경험을 소개함으로써 리더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롤(역할) 모델로 삼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선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이 많지 않는 게 현실이지 않습니까.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젊은 여성들이 굉장히 많이 참석했다는 것이 고무적인 일로 여기고 있어요. 사실 89년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를 설립한 이래 개인적으로 수많은 국내외 컨퍼런스에 참석했는데, 이번 컨퍼런스처럼 참석자들이 마지막 세션까지 자리를 모두 지키면서 필기하는 진지한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전체 컨퍼런스를 관통하는 담론을 담아 예컨대 ‘서울선언’ 같은 결의안을 채택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_컨퍼런스 세션 연사들에 대한 후일담도 적지 않았습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연사가 있다면요.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이라고 봐요. 사실 사진으로 볼 때는 굉장히 ‘얼음공주’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번 컨퍼런스에서 개인적으로 환담해 보니 이미지가 매우 달랐습니다. 친절하면서도 따스하고 섬세하고, 매우 부드러운 이미지였습니다. 물론 자기가 주장할 것은 추상 같이 하는 강한 면도 있었습니다만. 특히 ‘여성이 성공하려면 두 배로 실력을 키우라’는 얘기는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의 자서전을 보진 못했지만, 미국 사회에서 여성과 흑인이라는 차별적 요소들을 모두 극복하고 그 자리에 선 인물이기 때문이죠. 아울러 라이스 전 장관이 ‘여성의 권한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는데, 정말 100% 공감하고 있어요. 제니 쉬플리 전 뉴질랜드 총리의 경우 전에 다른 자리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가 지방의회 의원부터 시작해 총리까지 어떻게 오를 수 있었는지 짐작이 갈 만큼 역시 뛰어난 인물었습니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한국 정치인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었고요”
_40년 넘게 커리어우먼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밑천은 무엇일까요.
“물론 저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바를 도전 정신을 갖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가다 보면 좌절하고 하차할 수도 있겠지만, 멀리 보고 사회 정의를 좇는 일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났으면 합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고 권하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 분야를 제한하는 형태의 교육 제도 자체도 문제지만 너무 한쪽으로 몰리는 것 같습니다. 정치 분야에도 관심이 있다면 과감히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가 워낙 난장판이니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게 현실입니다만, 그런 것을 바꿀 여성들이 필요한 것도 역시 현실입니다.”
_정치 분야를 언급하셨는데, 우리나라 정치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과거에 비하면 여성의 정치 참여가 크게 늘어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세계여성리더십컨퍼런스에서도 논의됐습니다만,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겨우 13%에 불과합니다.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의 경우 대부분이 40%를 넘었고, 심지어 아프리카 르완다 같은 나라는 50% 수준입니다. 일본이 세계적으로 경제대국이지만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여성의 정치 참여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이 의회에 활발하게 진출한다는 것은 결국 세상을 보다 투명하고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는 것과 같습니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고, 여성 인권을 신장시킬 수 있는 법안들을 만들어내는 거죠. 이게 곧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길입니다. 가까이 있는 것인데,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남성 위주의 정책을 만드는 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_여성 정책과 관련해 정부에 조언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국가 경쟁력 제고 방안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겁니다. 북유럽처럼 의사결정자의 여성 비율을 확대하는 거죠. 스웨덴처럼 일반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40%로 의무화하는 방안까진 만들긴 어렵겠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정치권에서 솔선수범하면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이 보다 폭넓게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여성의 역량 강화가 중요합니다. 내년 2월 말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유엔여성지위위원회의 주제가 여성에 대한 사회교육입니다. 문화센터 같은 것 말고 여성들이 실질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침을 만들어 능동적인 사회 참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좋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고 남성과 보다 동등하게 주체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될겁니다. 아울러 여성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획기적인 대책도 나와야해요. 국제 무대에 나가면 성폭력 등의 이슈가 나오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입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한다고 해도 이런 낯뜨거운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세계에 국가 위신을 언급할 수 없어요. 브랜드 격상 방법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야 합니다.”
● 김정숙 약력
▦1946년 전남 나주 출생
▦전주여고, 고려대 교육학과, 미국조지워싱턴대 교육행정학박사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 이사장
▦정무차관, 14~16대 국회의원, 국회 여성특위원장, 한나라당 여성위원장
▦아ㆍ태여성정치센터 총재, 한국걸스카우트연맹 총재, 세계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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