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매년 10월2일 정부가 제출하는, 300조원이 넘는 예산안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나 다름없다. 이화여대 박재창(행정학) 교수는 “정부가 만든 예산안에 대해 국회가 본격적으로 손을 대려고 하면 전체 예산안의 틀을 바꿔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졸속 예산 심사의 문제점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젠 정말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야의 극한 정쟁 속에서 제대로 심사도 안 된 예산안을 졸속으로 통과시키고 밀실에서 실세 정치인의 지역구 예산을 늘리는 부조리한 관행만은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근원적 처방으로는 예산편성권을 미국처럼 아예 국회로 넘기자는 방안이 거론된다. 박재창 교수는 “국회에 예산편성권이 없다 보니 재정균형이나 장기적 발전 방향에 대한 자기 비전 없이 미시적 사업에 천착한 채 정쟁만 벌이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산편성권의 조정은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당장의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예산심의의 체질을 강화하자는 방안이 주를 이룬다. 현재 국회의 예산안 심의 기간은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하는 10월2일부터 12월2일까지로 60일에 불과하다. 미국 240일, 영국과 독일 120일과 비교해도 심의 기간이 짧은 편이다. 우리의 경우 그나마도 정기국회 개회 후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 일정과 겹쳐 실질적인 예산 심의 기간은 고작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 의식에 따라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이 지난 6월 예산안 제출 시점을 한 달 더 앞당기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국정감사 및 결산 심사를 전반기로 앞당기자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제안이다.
현재 각 상임위는 어차피 예결특위에서 조정될 것이라는 생각에 예비심사 단계 때 방만하게 예산을 증액하기 일쑤고, 예결특위 역시 거시적 조정보다는 미시적인 계수조정에 그치고 있다. 특히 15명으로 구성된 계수조정소위는 지역구 예산 챙기기 통로로 전락해 있다. 결국 국회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의미이다. 한국외대 이정희(정치학) 교수는 “계수조정소위의 예산조정 범주와 원칙을 사전에 공개하고 주요 상임위 위원장과 간사, 예결특위 위원들에 대해 집중적인 감시를 해야 하다”고 제안했다. 기획예산처 장관 출신의 민주당 장병완 의원은 “예결특위를 일반 상임위로 바꿔 임기 1년에 불과한 예결위원의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차원의 자정 노력과 국회의원들의 자세 전환도 필요하다. 예결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예산안 심사에 앞서 실세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사후에 공정하게 심사했는지 여부에 대해 평가 받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신해룡 국회 예산정책처장은 “국회가 매년 1월 예산편성 단계부터 국가재정에 관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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