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 첼시에서 우리 전통 예술의 소재인 자개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동그라미의 화가’로 잘 알려진 서양화가 정현숙 대진대 교수가 첼시의 킵스갤러리에서 지난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여는 초대전 ‘Before and After’를 통해서다.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원(圓)의 형상을 탐구해온 정씨는 4년여 전부터 전통 자개를 현대미술의 오브제로 활용한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받아 왔다. 화면 위에 수천 개의 자개 조각과 크리스털을 이어붙여 커다란 원이나 달항아리, 탑, 불상 등의 형상을 만드는, 신비롭고 서정적인 느낌의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한층 더 한국적인 느낌을 강조한 신작들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원, 삼각형, 사각형 등 기하학적 형태의 자개 조각을 사용했던 기존 작업과 달리 전래의 나전칠기에 사용되던 꽃이나 나비, 새, 풀잎 등의 문양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 캔버스에 배색한 뒤 일일이 하나씩 촘촘하게 붙인 작은 나비와 꽃 문양 자개가 전체적으로는 커다란 원형을 이루는데, 전통미와 미니멀한 현대미술의 감각이 강렬한 조화를 이룬다.
정씨는 “자르고 붙이는 우리 고유의 장인 기법을 통해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고, 끝과 시작이 없는 원의 형태를 통해서는 시간성과 사유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일관된 작업 주제인 ‘Before and After’는 전과 후가 이어지고 그 이어짐이 새로운 세계로 창조된다는 뜻을 내포한, 동양적 생명ㆍ시간 사상의 표현이다. 내년 2월 독일 베를린에서도 개인전이 예정돼 있는 그는 “앞으로는 자개 작업을 보다 입체적으로 발전시켜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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