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막 문을 닫으려던 서울 종로구의 한 은행 지점에 이모(22)씨가 급히 뛰어들어왔다. 그는 "통장 하나만 빨리 만들어달라"고 직원을 졸랐다. 다급히 부탁하는 탓에 은행직원은 그가 내민 주민등록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불과 3, 4분만에 이씨는 새 통장을 들고 사라졌다.
며칠 뒤 이씨는 인터넷 중고판매사이트를 통해 '영업'에 들어갔다. 백화점 명품관에서 직접 산 것이라며 물건들을 내놓고는 돈을 가로채는 쇼핑몰 사기다. 인터넷 고객들은 의심 없이 이씨에게 주문을 냈다. 10여 가지 물건의 총 판매액만 780여만원에 달했고 3개월 후 똑같은 수법으로 역시 3일간 700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구매자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사기수법이었다. 가령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물품판매시간은 딱 3일로 한정했고 주민증과 통장 사본까지 공개해 신뢰할만한 판매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사실 통장을 만들기 위해 내놓은 주민증은 PC방에서 3만원에 구입한 것이다.
이씨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현금출납기에서 돈을 찾을 때도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경찰관계자는 "경찰서 4, 5곳이 이씨를 붙잡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치밀한 수법 때문에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현금 인출이 이루어진 지역 주변을 5개월간 광범위하게 탐문한 끝에 이씨의 덜미를 잡을 수 있었다. 이씨는 경찰에서 교도소 동기로부터 범행수법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이 방면의 전문가인 교도소 동기는 "남의 인생을 살아라" "2, 3일 안에 승부를 봐라" "3개월 내 같은 범행을 저지르지 마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14일 이씨에 대해 판매사기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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