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한나라당)가 무슨 바보인가. 너희(기획재정부)만 똑똑한가."
13일 오후 한나라당 여의도당사 6층 대표실에서 안상수 대표의 고성이 흘러나왔다.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약속한 템플스테이 지원 사업비 등 일부 예산 누락 파문을 놓고 안 대표가 경위 파악과 질책 차원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불러 면담한 자리에서다.
안 대표는 이 자리서 당의 중점 추진 예산 누락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정권은 한나라당이 만든 한나라당 정권임을 명심해야 하고 모든 주요 정책의 중심에 한나라당이 있다"며 "당과 대표가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에 대해선 정부가 반드시 존중해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윤 장관도 "한나라당의 중점 사업이 예산집행 과정에서 적절하게 처리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적극 협조하겠다"며 "예산뿐 아니라 모든 정책에 대해서도 당과 긴밀하게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안형환 대변인은 전했다.
일단 겉으로 봐선 기재부가 고개를 숙인 모양새다. 하지만 실제 면담에서는 안 대표의 질타에 윤 장관이 굴하지 않고 꼬박꼬박 반론을 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안 대표가 면담 도중에 "기재부가 예산권을 갖고 있느냐" "기재부만 (나라살림을) 걱정하느냐" "당 대표가 요구한 예산이 하나도 반영된 게 없지 않느냐" 며 윤 장관을 질책했고, 그 소리가 대표실 밖에서도 들렸다. 안 대변인도 "윤 장관이 자꾸 대꾸하니까 안 대표가 야단을 쳤다"고 했다.
윤 장관은 이미 안 대표와 면담을 갖기에 앞서 기자들이"한나라당 내에서 기재부의 준비 부족으로 일부 예산이 누락됐다는 얘기가 있다"고 질문하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예산, 재정과 관련된 기준과 원칙을 당도 존중해줘야 한다"고 당에 쓴소리를 했다. 윤 장관은 이날 안 대표와의 면담에서도 이 같은 소신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날 한나라당이 기재부 장관을 질책해 예산안 파동의 '혹'을 떼려다 당정 불협화음만을 노출하는 또 다른'혹'을 붙인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특히 이날 설전에는 1946년생 동갑으로 서울대 법대 1년 선후배 사이인 안 대표와 윤 장관의 묘한 라이벌 의식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50여분 동안 비공개 면담을 마친 윤 장관은 "당과 소통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할 말은 다 했다"고 짧게 답한 뒤 서둘러 당사를 떠났다. 안 대표는 "내가 질책을 좀 했다"고 했지만 "윤 장관이 사과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유감을 표명했다"고만 했다.
한편 김황식 총리는 이날 간부회의에서 "문제가 되는 예산은 잘 정리해서 바로잡을 게 있으면 바로잡고 시정할 부분은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러나 왜곡돼 전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 관계자들이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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