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태준의 문향] <62> 다석(多夕) 유영모의 '정음 한 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태준의 문향] <62> 다석(多夕) 유영모의 '정음 한 자'

입력
2010.12.12 05:54
0 0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ㆍ1890~1981)는 스스로 깨달은 삶, 철저한 정음(正音ㆍ한글) 사랑, '우리말로 철학 하기'의 새 길을 연 뛰어난 한국 철학자다.

다석은 '말'을 중시하여 자신의 삶을 말(소리)을 기준으로 세 단계로 나눴다. 이는 계소리(계시를 처음 받았다는 뜻으로 말로 깨닫는 시기ㆍ만 52세까지), 가온 소리(그리스도의 소리라는 뜻으로 하루 한끼를 먹으며 앉아 수행하는(一食一座) 수도 기간ㆍ52~65세), 제소리(성령의 소리라는 뜻으로 자기 소리를 낼 수 있는 시기ㆍ65세 이후)라고 정의했다. 그가 스스로 거듭난 날, 이 세상에 온 지 1만8,925일 되는 중생(重生)의 날에 "주(主)는 누구시뇨? 말씀이시다. 나는 무엇일까? 믿음이다"고 고백했다.

"말을 보이게 하면 글이고, 글을 들리게 하면 말이다. 말이 글이요, 글이 말이다. 하느님의 뜻을 담는 신기(神器)요, 제기(祭器)다." "이렇게 몇 자가 분열식을 하면 이 속에 갖출 것 다 갖춘 것 같아요. 말이란 정말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말도 정말 이렇게 되어야 좋은 문학, 좋은 철학이 나오지, 지금같이 남에게(외국어) 얻어 온 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돼요. 글자 한 자에 철학개론 한 권이 들어 있고, 말 한 마디에 영원한 진리가 숨겨져 있어요."(박영호 <다석 유영모의 생애와 사상(하)> 131-132쪽 재인)

이렇게 다석은 정음(한글)을 하늘의 계시로 만들어진 글이라고 선언하는 동시에, 특히 바탕 모음 'ㆍ' 'ㅡ' 'ㅣ' 석 자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원리로, 한글의 원음인 '·'는 '빈탕 한데'다 점 하나를 찍은 모양으로 주목했다.

텅빈 빈탕(無)에 처음으로 무엇인가 생겨 나오는 모양, 태초의 'ㆍ'에서 발생하여 나오는 우주의 생성은 그 전체를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하나'로 되며, 이것은 다시 영원한 생명인 '한아님'으로 되고, 이 '한아님'의 긋(끝)이 '나'라고 보았다.

다석 사상의 뛰어남의 하나는 정음의 가치를 되찾고, 언문 곧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로 글을 쓰고, 우리말로 철학할 수 있고, 철학해야 함을 보여준 데 있다.(김흥호ㆍ이정배 편;<다석 유영모의 동양사상과 신학> 57쪽, 이기상;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2004. 참조)

특히 그가 믿는 기독교의 유일신 하느님을 '없이 계신 하느님'이라고 불렀을 때, '없음'을 강조한 불교는 다석에게 기독교의 핵심을 표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었다.(이정배; 다석(多夕) 신학 속의 불교, <불교평론> 40호, 2009, 264쪽 참조)

기독교를 '없음'의 빛에서 재구성한 다석의 신학, '없이 계신 하느님'은 그렇기에 불교와 더불어 말할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다석은 불교 자체를 온전히 긍정했고, 하늘로부터 계시 받을 것은 다 받은 종교라고 하였다.

그의 제자 함석헌도 '뜻'에 있어서 불교 또한 기독교와 다름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존재 중심 사유'를 비판하며, 존재의 바탕이 되는 '없음' '빔' '빈탕'에 바탕을 둔 생각으로 '참 나'를 자각하고, 생명론, 새로운 우주론을 통하여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의 길을 활짝 연 그의 철학은 '빈탕 한데'다 점 하나를 찍은 모양에서 '한아님'을 보는 그의 '정음' 사랑으로 한 권의 우리 철학개론이 되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