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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논술이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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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논술이 죄인?

입력
2010.12.1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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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 특히 문과(文科)는 시부(詩賦)에서 정치ㆍ경제ㆍ외교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인문ㆍ사회학적 자질을 총체적으로 심층 평가하는 대단한 시험이었다. 몇 년 전 라는 책에서 과거시험의 최고 단계인 어전(御前) 논술문제를 정리했다. 세종은 법의 허점으로 인한 폐단사례와 역사적 대안들을 예시한 뒤 "각 대안들의 타당성 여부와 현실적 대책을 논하라"는 문제를 냈다. 중종은 "그대가 공자라면 어떤 정치를 하겠는가?" 물었고 명종은 교육의 방향, 광해군은 국가위기 극복방안을 묻는 문제를 출제했다.

■ 논술시험이라면 역시 프랑스 대입자격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eate)다. 가령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반드시 욕망과 싸우는 걸 의미하는가?'같은 문제는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예시 답변을 보면 플라톤과 에피큐로스, 칸트를 관통하는 사상사에서 욕망, 쾌락, 도덕론을 논한 뒤 타당한 논리적 결론을 내리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올해에는 '진실 추구는 공정할 수 있는가?''역사가의 역할은 심판하는 것인가?''예술은 규칙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등의 문제가 출제됐다.

■ 동시대 어떤 국가보다도 수준 높던 우리 과거시험에 뿌듯해하고, 바칼로레아를 부러워하던 차에 난데없는 얘기가 나왔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대학에 "논술시험을 줄이면 재정지원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내용이다. 이유는 딱 하나다. 논술이 사교육을 조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수능이 어렵게 나오는 바람에 수험생들이 논술을 로또(교육부 관계자의 표현이다)처럼 여겨 사교육이 더 극성을 부린다는 얘기다.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 논술이야말로 주입식 교육을 보완할 최선의 대안으로 떠받들어지지 않았던가.

■ 이 기막힌 전도(顚倒)의 가장 큰 원인은 일선 학교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통합적 사고능력을 가르친 적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와 교사들이 논술지도를 포기해버린 때문이다. 당연히 생존능력 강한 사교육 시장이 주워 먹었다. 교육적 효과가 명백하고, 어쩌면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해보지 않아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공교육이 외면해버린 것이다. 대학과 연계한 논술 연구지도가 필요하다는 숱한 조언도 뭉개버렸다. 그리고는 체벌 없어져서 못 가르쳐 먹겠다는 따위의 푸념만 무성하다. 우리 공교육의 적나라한 실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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