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병 지음
돌베개 발행ㆍ288쪽ㆍ1만5,000원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빠져나올 어떤 방법도 없네/ 팔십대면 모두 죽여버리니/ 백성도 임금도 똑같은 신세.'(이언진의 시 '호동거실ㆍ衚衕居室 169수'에서)
우리는 세상 바깥에서 살기를 꿈꾸었던 몇몇 방외인(方外人)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조선시대에 한정하자면 정치 현실에 대한 불만의 표현으로 불가에 귀의했던 김시습(1435~1493), 지배계급이었지만 하층민의 반란에 가담했다 처형당한 허균(1569~1618) 같은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체제와의 불화 끝에 방황하거나 혹은 끝까지 저항하다 목숨을 잃기도 하는 이런 이름들은 그 불온함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박희병(54)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조선 후기의 역관시인 이언진(1740~1766)을 이 문제적 인물들의 계보에 올려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남긴 작품이라곤 170수의 연작시 '호동거실' 정도밖에 없는, 스물여섯 살에 요절한 이언진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언진 평전 <나는 골목길 부처다> 는 이언진의 '호동거실'을 번역한 <골목길 나의 집_이언진 시집> (2009)과 이언진 문학 평설집인 <저항과 아만> (2009)에 이어 저자가 '이언진 3부작'을 매듭짓는 책이다. 개별 작품 소개와 해설만으로는 이 시인의 본래 면목을 보여주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꼈는지, 이언진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쏟은 공력을 실감할 수 있다. 기존의 작업이 '호동거실'을 중점적으로 분석해 그의 문학관을 재조명하는 일이었다면 평전은 다양한 자료를 훑어 이언진의 본래 모습을 되살려낸다. '호동거실'을 기본 자료로 하고, 연암 박지원이 쓴 전기 '우상전(虞裳傳)', 이언진이 조선통신사 수행 역관으로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유학자들과 나눈 필담집 '앙앙여향(怏怏餘響)'과 '양호여화(兩好餘話)' 등을 정세하게 들여다봤다. 저항과> 골목길> 나는>
저자는 이언진을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동아시아의 선구적인 인물"이라고 평한다. 한국 지성사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성사의 맥락에서 이언진의 급진성을 재평가하자는 것이다. '분서'의 저자로 이언진에게 큰 영향을 준 중국 명대 말기의 사상가 이탁오(1527~1602), 경자유전과 자급자족을 주장했던 일본의 근대 사상가 안도 쇼에키(1703~1762)와 이언진을 견주는 대목이 흥미롭다.
가령 이탁오와 이언진 모두 주자학에 반대하며 인간평등론을 주장했지만 저자는 군주권을 존중한 이탁오에 비해 군주권마저 타기해야 할 것으로 본 이언진의 사상이 더 과격하다고 평가한다. 사족 출신인 이탁오의 평등론이 사대부 계급 내의 분파투쟁이라면 중인 출신임을 예민하게 의식했던 이언진의 사상은 사대부 계급에 대한 비사대부 계급의 계급투쟁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 쇼에키와의 비교도 흥미롭다. 쇼에키 평등론의 핵심은 모든 사회구성원을 농민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전복적 발상이지만 지식인이나 상인, 수공업자 등을 배제한 것은 한계다. 저자는 기존 체제와 지배계급을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특정 계급을 차별하지 않는 이언진의 평등론이 쇼에키의 사상보다 좀더 보편적이라고 해석한다.
'이 따거(大哥)의 쌍도끼를/ 빌려와 확 부숴 버렸으면'이라며 급진적 방식으로 신분해방과 인간평등의 가치를 실현시키려던 이언진. 저자가 이 직정적이고 불우했던 시인을 사후 200년도 더 지난 오늘날 우리 앞에 불러오는 이유는 단지 '좌절한 천재의 비극'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저항은 늘 현재적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넘어 좀더 인간다운 삶을 가져다줄 체제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 앞에 서 있는 현대인들에게 불꽃 같았던 이언진의 삶은 분명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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