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니아 마추코 지음ㆍ이현경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ㆍ576쪽ㆍ1만3,000원
이탈리아 소설가 멜라니아 마추코(44ㆍ사진)가 2003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그해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받은 작품이다.
겹겹의 이야기 구조를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의 중심 서사는 20세기 초 가난을 벗고자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에 간 열한 살 소년 디아만테와 아홉 살 소녀 비타를 주인공으로 전개된다. 비타는 정작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아버지 아?獺括?초청을 받아 긴 항해 끝에 뉴욕에 도착했지만 이들 앞에는 가난, 차별, 학대, 범죄로 점철된 나날이 기다리고 있다. 아?獺寬?오직 집세 수입을 늘릴 목적으로 침상을 빽빽히 배치한 낡은 하숙집에서 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고달픈 삶을 견딘다. 머지않아 이들의 감정은 사랑으로 발전한다.
디아만테는 고국의 궁핍한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 비타와의 미래를 위해 신문 배달, 넝마주이, 장의사 보조역 등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비타 역시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일을 거들며 앞날을 도모하지만, 그녀에게는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손에 잡히는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하다. 철도 건설 현장에 가 있느라 디아만테와 떨어져 있는 동안 그녀는 범죄 세계에 몸담고 있는 유부남 로코와 정을 통하면서 연인을 배신한다. 디아만테는 끝내 비타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이탈리아로 돌아와 순탄치 않게 살아가고, 비타는 아버지의 식당을 크게 키워 미국 사회에 안착한다. 두 사람의 삶은 훗날 비타가 이탈리아로 디아만테를 만나러 갈 때까지 어긋난 채로 흘러간다.
소설은 비타와 디아만테의 비극적 연애담에다, 죽은 디아만테를 친부로 여기고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로베르토, 로베르토의 딸로 자기 가문의 역사를 복원해가는 작가 ‘나’의 이야기를 결합시켜 100년에 걸친 시간성과 서사의 입체성을 확보한다. 소설 속 ‘나’는 작가 마추코의 실제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데,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미국 이민을 갔던 선조들의 증언을 듣고 미국 현지에서 방대한 사료를 조사했다고 한다. 덕분에 이 소설은 20세기 초반 이탈리아계 미국 이민자 사회의 상황과 인간 군상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여주인공 비타일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 굴하지 않고 기어이 고유한 개성과 삶의 의지를 역동적으로 발산하는 그녀는 여느 고전의 주인공들처럼 인생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온몸으로 던진다.
이훈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