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유통업체가 파격적 가격으로 피자와 치킨을 공급하면서 관련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현실적으로 싸게 파는 것 자체를 규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10일 한 정부 관계자는 "대량구매를 통해 싸게 공급하는 것을 문제 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상적 과정을 거쳐 내려간 단가라면, 이를 규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게 당국의 생각이다.
그나마 영세 자영업자들이 기대 볼 만한 조항이 공정거래법에 명시되어 있기는 하다. 이 법 제23조 1항 2호는 '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를 불공정행위로 규정하고, 시행령에서 그 유형으로 '부당염매(덤핑)'를 정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0일 "업계가 제소하면 위법성 여부를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싸게 파는 행위가 부당염매가 되려면 '정당한 이유 없이, 소요되는 비용보다 현저히 낮은 값으로' 공급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결국 대형마트가 대량구매를 통해 단가를 낮춰 조금이나마 이윤을 남긴다면, 부당염매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공정거래위원회 한 관계자도 "부당염매는 조건이 까다로워 적용 사례가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같은 법 제23조 1항 2호의 '부당 고객 유인' 조항도 검토해 볼 만하나, 이 역시 원가절감을 통해 낮춘 가격을 '부당하거나 과대한 이익 제공'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 반응이 많다.
결국 현행 법령상, 대기업이 가격을 무기로 자영업자의 영역에 진입하는 것을 규제할 수단을 찾기 어렵다는 것. 그렇다고 법제화를 통해 진입 자체를 차단하면 위헌 소지가 있고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의 사업 영역을 자율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동반성장위원회 등이 나서 자영업자가 영위할 수 있는 업종을 정해 대기업에 진입 자제를 권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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