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거운 몸으로 농사짓는 풍경은 이제 우리 농촌에서 낯설지 않다. 여러 다른 산업이 세상 변화에 발 맞춰 변화와 발전을 기할 때도 농업은 30년, 40년 넘게 그 시절 그 주인공들이 아직 현장을 지키고 있다.
대한민국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지만, 농촌만 떼어놓고 보면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노후 소득의 부족으로 기본적인 생활비나 의료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고령 농가가 늘어나는 등 농촌의 노인문제는 도시의 노인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해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다행히 농어촌 고령자를 위한 농지연금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고령 농가의 노후생활 안정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본격 시행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농지연금은 농촌형 역모기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만 65세 이상 고령 농민이 소유한 농지를 담보로 노후생활자금을 매월 연금 방식으로 지급하고, 농민이 사망하면 담보농지를 처분해 연금채무를 상환하는 방식이다. 고령 농민들의 노후생활 안정을 돕기 위해 개발된 연금 상품이다. 가입자는 연금을 받으면서도 담보 농지를 경작하거나 임대하여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촌은 도시에 비해 주택 가격이 싸기 때문에 그간 실질적인 노후보장 제도인 주택연금의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 만큼 농지연금의 시행은 농촌 노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최초로 시행되는 농지연금은 이제 시작 단계이므로 성공적으로 정착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땅에 대한 국민의 의식 전환과 부모자식 간의 소통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발표한 2008년 주택연금 수요실태 조사에 따르면, 노인가구가 주택연금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주택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서'(39%)이다. 부모 자식 간에 뿌리 깊은 상속 관념과 가족의 반대가 주택연금과 같은 역모기지 제도를 기피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집이나 땅을 자식한테 상속해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농지연금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도 우려되는 점이다.
농지연금이 실질적으로 농촌 노인들의 안정적 노후생활을 보장하려면 농지를 소유와 상속 수단이 아닌 경작과 이용의 수단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 모두 부모의 행복하고 독립적인 노후를 위해 적극적으로 농지연금을 고려하는 융통성 있는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노인은 과거의 청년, 청년은 미래의 노인'이라는 말이 있다. 젊은 세대 역시 노후생활을 위한 제도의 미래 수혜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농지연금, 주택연금과 같은 역모기지 제도가 지금의 고령층은 물론 젊은 세대에게도 언젠가 다가올 노후생계를 보장하는 금융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역모기지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80년대 말에는 제도에 대한 불안감과 강한 상속 욕구, 부정적 인식 등으로 상품 판매량이 매우 저조했다. 정부와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그 효과와 안정성을 널리 홍보하며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00년대 들어 높은 판매실적을 보이며 제도가 자리 잡게 되었다.
농지연금은 단순히 현재의 고령 농가를 위한 정부의 배려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 국민 생활의 장래를 설계할 제도로서 역할할 것이다. 농지연금 제도가 농촌사회의 미래를 위해 하루 빨리 자리매김 하기를 바란다.
김영성 한국농어촌공사 경영지원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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