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인수전이 소송전으로 비화,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그룹의 인수 자금에 대한 의혹이 풀리지 않은 채 현대차와 현대그룹이 각각 채권단을 향해 본격적인 송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는 양측이 명예훼손 등으로 상대편을 고발한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상대편의 반칙을 지적하던 것에서 아예 심판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10일 현대차는 채권단 주간사인 외환은행의 실무담당자 3인을 입찰 방해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또 이들 3인과 외환은행에 대해 5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함께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으로부터 조달한 1조2,000억원에 대한 대출계약서 최종 제출 시한(14일)을 앞둔 시점에서 최대 압박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이날 현대차는 고발장에서 "외환은행 실무자 3명이 현대그룹에게 대출계약서외에 계약내용협의서(term sheet) 제출을 허용해 줬다"며 "계약내용협의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어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대출계약서 제출을 공표해 놓고도 계약내용협의서 제출을 허용한 것은 현대그룹에게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준 것"이라며 "외환은행이 매각 주관사로서 의무를 버리고 범법 행위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그룹도 즉각 맞대응에 나섰다. 이날 현대그룹은 채권단과 체결한 인수 우선협상권자자리를 지키기 위해 양해각서(MOU) 해지금지 등에 대한 가처분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현대그룹이 14일 나티시스은행과의 대출 계약서가 아니라 향후 논란이 될 수 있는 성격의 서류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도 이날 채권단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가처분 소송은 결국 우선협상대상자로서의 권리를 채권단이 아니라 법원으로부터 보호받겠다는 것. 현대그룹은 아예 입찰 과정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인수조건과 평가기준 등 모든 조건이 현대차에 유리하게 설정됐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은 논거로 입찰가격이 4,100억원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겨우 총점 1점 미만의 차이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점을 들었다. 또 현대차가 채권단과 관련기관을 압박하고 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그룹을 보호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채권단은 소송과 관계없이 14일까지 나티시스은행 대출자금에 대해 현대그룹이 계약 조건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의 제출을 기다릴 예정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논란이 된 계약내용협의서는 현대그룹에게 조건을 완화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건을 강화한 것"이라며 "14일 이후 MOU 해지 여부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송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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