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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동남아에서 희망의 포석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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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동남아에서 희망의 포석을 보다

입력
2010.12.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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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바둑 열기가 뜨겁다. 유럽이나 미주지역에 바둑이 전해진 지 벌써 100년이 넘었지만 동남아 국가의 바둑 역사는 20여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에서 일고 있는 바둑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이미 유럽지역을 추월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도 당당히 선수단을 파견해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태국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에는 한국의 프로와 아마기사들이 올해부터 정부 지원을 받아 지도사범으로 파견돼 활발히 바둑보급활동을 펼치고 있어 머지 않은 장래에 한중일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새로운 강자들이 출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프로기사회 보급팀장을 맡아 국내외 바둑보급을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 김성룡 9단이 최근 동남아 바둑계를 돌아 보고 작성한 출장보고서를 옮겨 싣는다.

그동안 우리나라 기사들이 이런저런 명분으로 세계 각국에서 바둑보급활동을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올해가 한국의 해외바둑보급 원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여명의 프로ㆍ아마기사들이 공식적인 정부지원금을 받고 해외로 파견된 첫 해이기 때문이죠. 아시안게임에서 세 개의 금메달을 싹쓸이 한 바둑강국이지만 해외보급은 일본보다 100년이나 늦은 게 현실입니다.

최근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바둑계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바둑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엄청나게 높았고 한국에서 파견된 기사들도 무척 열의를 가지고 보급활동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동남아에서 바둑보급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나라는 태국입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화교와 한국인 일본인을 제외한 태국의 바둑인구는 달랑 2명이었지만 지금은 공식적인 단증 보유자가 405명이고 19줄 바둑을 끝까지 둘 수 있는 정도의 기력을 보유한 사람(18급 이상)이 5만명이라고 합니다. 바둑대회도 연간 50여회가 열립니다.

태국에서는 특히 굴지의 기업인 CP그룹 코삭 회장이 “세상에 바둑보다 더 좋은 게임은 없다”는 믿음 아래 정열적으로 바둑보급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CP그룹은 기업의 사회환원 방식의 하나로 바둑을 택했습니다. 전국의 초중고 및 대학교에 1주일에 한 번씩 강사를 파견해 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비용은 전액 CP그룹 부담입니다. 그 결과 태국 바둑계가 동남아 국가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게 됐습니다. 태국 방콕에는 김중협 아마7단이 파견돼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국민소득으로만 따진다면 우리나라보다 2배 이상 잘 사는 나라입니다. 그 때문인지 태국과 마찬가지로 바둑보급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습니다.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바둑강의가 활성화 돼 있고 우수한 외국인 강사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싱가포르엔 중국인 프로 2명과 한국의 조미경 초단이 각급 학교와 바둑협회에서 보급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중국기사들은 중국어로 조 초단은 영어로 강의합니다. 싱가포르 바둑인구는 20년 전 1,000명이었지만 지금은 1만명을 넘어섰습니다.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태국이 그랬던 것처럼 완전한 황무지에서 시작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바둑계는 현재 바둑인구가 3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두 나라는 싱가포르도 참가하지 못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에 당당히 선수단을 파견할 정도로 열의가 대단합니다. 중학생과 대학생으로 구성된 말레이시아 선수들과 바둑을 배운지 겨우 5년 만에 프로에게 3점 접히는 수준까지 기량이 향상된 베트남 대학생 선수를 보면서 가슴 뿌듯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올해부터 베트남 호치민에는 이강욱 2단, 하노이에는 이향미 아마 7단이 상주하며 바둑보급활동을 펼치고 있어 더욱 커다란 발전이 기대됩니다.

특히 말레이시아 바둑인들은 싱가포르에게 반드시 이기고 싶은 욕망이 있고 베트남 대학생들은 태국에겐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각오가 대단합니다. 어느 분야이건 경쟁심이 가장 중요한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어렸을 적 선배 바둑인들이 항상 하시던 말씀처럼 ‘일본을 한 번 이겨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우리의 바둑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밑거름이 됐듯이 이들 동남아 4개국도 서로 간의 경쟁을 통해 바둑 수준이 일취월장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또 한 가지 동남아 바둑계를 돌아 보면서 그동안 바둑계의 해외보급활동이 주로 유럽이나 미주 쪽에 중점을 두었던 게 과연 옳은 방향이었나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유럽지역은 지난 100년 동안 바둑을 접했음에도 바둑인구 증가추세가 매우 더딘 반면 GNP 1,000달러에서 1만달러 사이의 동남아 개발도상국들은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바둑인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럽이나 미주 지역에서 바둑인구를 100명 늘릴 정도의 노력이나 시간과 비용이면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몽골 같은 곳에선 열 배 이상 바둑인구를 증가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45년 해방 당시 대한민국에서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이 불과 3,000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둑인구가 가장 많았던 1990년대엔 무려 1,0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엄청난 발전 속도입니다. 지금 동남아의 바둑 열기는 과거 한국 못지 않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한중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새로운 강자들이 출현해 세계 바둑계가 더욱 풍성해지는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성룡 (프로기사ㆍ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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