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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뜨거운 물 한 잔 같은 목소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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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뜨거운 물 한 잔 같은 목소리가 있어

입력
2010.12.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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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할아버지는 결국 목이 아프셔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그 인후를 나에게 물려주셨는지 요즘 나도 자주 목이 아프다. 자고 일어나면 이유도 없이 목이 쉬어 있을 때가 많다. 어려서는 웅변 선수로 '이 연사 목이 터지라 외칩니다!'라고 사자후를 외치곤 했는데 요즘은 큰 소리를 자제하며 산다.

나도 모르게 열정적이 되다 보면 목소리가 고장 난 마이크처럼 '삑사리'를 낸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노래방에 발길 끊은 지도 십수 년이 지났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겁이 난다. 정치판이나 집회장이나 목소리 큰 사람이 많다. 철의 목소리를 가졌지만 식상한 목소리에 짜증부터 난다.

천 갈래 만 갈래 물길이 흘러와 한 그릇에 담기는 것이 세상 이치인데 시종일관 자신의 주장에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간장 종지에조차 담기지 못하는 법이다. 시인들 중에 가장 부드럽고, 가장 강한 목소리를 모두 가진 시인은 도종환 시인이다. 나는 한 번도 시인의 쉬어있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는 늘 같은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평화를 선물한다. 그 반대편에 얼굴 없는 목소리가 있다. 인터넷의 '악플러'들이 그들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쉴 리가 없지만 한 번도 청중의 박수를 받지 못하는 그림자들의 어두운 목소리일 뿐이다. 남쪽도 꽤 추워졌다. 추운 날, 마음을 녹이는 뜨거운 물 한 잔 같은 목소리가 그립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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