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여의도극장의 고정 프로그램인 난투극 난장판 난리쇼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재연돼 자랑스럽고 찬란한 국회의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제대로 심의되지 않은 안건이 이 와중에 일괄적으로 처리됐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도 예산안의 곁다리로 통과됐다. 그 동안의 진통, 민주당의 법 철폐ㆍ수정 발의 다짐을 보면 허망한 결과이지만, 법 통과를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논의 15년 만에 법 통과
법 통과는 서울대 법인화가 본격 논의된 지 무려 15년 만의 일이다. 법인화의 장ㆍ단점이나 문제점에 관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져왔다고 볼 수 있다. 야당의 반대로 절충안 없이 1년 동안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에 무작정 계류돼 있었던 것 자체도 문제였다. 이 위원회는 법안처리 실적이 0건인, 이상한 위원회다.
내년 12월 '국립 서울대'가 '학교법인 서울대'로 바뀌면 절반 이상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15명 이하의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되며, 정부 간섭을 벗어나 자율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정부의 재정 지원은 계속 받으면서도 교원 임용이나 수익사업 재산 처분 등에서 민간 조직과 비슷하게 독자적인 발전전략을 추구할 수 있다. 사실 국립대학들은 지금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교육부의 간섭을 받는 게 번거롭고 피곤해 포기하곤 했다. 그런 성가신 일을 겪지 않는 게 가장 큰 변화다.
이제부터 필요한 일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온 문제점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사실 대학의 '기업식 효율성'운영을 지향하다 보면 대학의 공기가 오염되고 연구ㆍ교육의 자발성이 훼손될 수 있다. 특히 사립대와 달리 정책적으로 국립대학이 지켜야 할 학문의 다양성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서울대 법인화를 통한 변화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총장 선출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교직원 직선제에서 이사회가 선임하는 간선 방식으로 바뀌면 직선제의 온갖 부작용과 말썽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대학사회에 도입됐던 총장 직선제는 숱한 부작용을 빚었지만, 서울대는 문제점을 알면서도 이 제도를 줄기차게 운영해왔다.
총장선출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계기로 바람직한 총장상이 새롭게 정립되기를 바란다. 언제부턴가 대학 총장은 기부금을 많이 끌어들이는 사람으로만 인식돼왔고, 전통적으로 중시돼온 '학식과 덕망'이라는 요소는 대학경영에 무능한 사람의 지표처럼 돼 버렸다. 이제 대학이 법인이 되면 기업경영 식 운영이 정착되고 '돈 잘 버는 사람'이 총장이 될 공산이 더욱더 크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달라지는 만큼 역설적으로, 대학총장은 대학을 대표하는 지성이 선출되기를 희망한다. 대학 법인화로 인문학의 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학총장상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가 세계 일류대학과 경쟁하려면 우수교원 확보ㆍ무능교원 퇴출 등 앞으로 많은 변화와 진통을 겪어야 한다. 지금 서울대는 국제 경쟁력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영국 타임스 고등교육(THE) 매거진의 올해 세계 대학 순위에서 서울대는 지난해 47위에서 109위로 떨어졌다. 이미 법인화한 포스텍은 지난해 134위에서 28위로 뛰어올랐고, 26위로 평가된 일본 도쿄대도 2004년 법인화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다른 대학의 시범 되게
법인화 시범 대학이기도 한 서울대는 실패하면 안 된다. 법인화를 일률적으로 실행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대를 개혁의 모델로 삼아 점차 확대키로 한 정책방향이 옳다고 본다. 획일적인 제도개혁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인화 이후의 재미있는 현상은 일본의 경우 동창회가 더 활성화되고 지역사회와의 유대가 더 강해져 '닫힌 대학'이 '열린 대학'으로 점차 변화되고 있는 점이다. 우리 (고장) 대학이라는 연대감을 키우는 것은 대학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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