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고소ㆍ고발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신한 빅3'의 신병처리를 놓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 사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이 일부 언론에 미리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은 사전 구속영장 청구,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불기소 방침"이라고 돌출발언(한국일보 10일자 10면)을 한 탓이다.
김 총장의 발언이 수사팀을 곤혹스럽게 만든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수사의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어 좀더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이중희)는 8, 9일 이 행장과 신 전 사장을 각각 두 번째로 불러 조사한 데 이어, 10일에도 신 전 사장의 주변인사 1명을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윤갑근 3차장검사는 이날 "(신병처리와 관련해) 현재 정해진 방침은 아무 것도 없으며, 수사팀이 수사를 끝내면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음주 중에는 아마 사건처리의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로선 어느 정도 머리 속에 '그림'은 있을지언정, 사법처리 대상자와 혐의사실, 사법처리 수위 등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때문에 이와 배치되는 김 총장의 언급은 수사팀과의 충분한 교감 없이 김 총장 개인의 판단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만약 수사팀이 실제로 김 총장의 '방침'대로 수사결과를 내놓을 경우, "수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총장이 내린 가이드라인에 결론을 짜맞췄다"는 비판이 나올 게 뻔하다. 전날 윤 차장검사도 이 같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렇다고 다른 결론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그리 될 경우 김 총장으로선 "사건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 섣부른 발언을 했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어 총장으로서 권위에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상명하복의 관행이 뚜렷한 검찰 조직의 특성으로 볼 때 조직 장악력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김 총장과 수사팀이 사전에 논의하고 합의한 결과를 총장이 미리 말한 것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사팀이 거짓말을 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또, 김 총장이 수사공보 준칙을 위반했다고 볼 여지도 더욱 커진다. 객관적인 정황상 이러한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어찌됐든 김 총장의 사려 깊지 못한 행위로 인해 검찰이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이와 관련, 김 총장은 이날 대검 간부회의에서 이번 파문의 경위를 설명한 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수사팀은 이 같은 논란이나 신한은행 측의 고소 취소 등을 의식하지 않고, 수사에만 충실해 혐의사실이 입증되는 대로 피의자들을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불기소 방침 설(說)이 돌고 있는 라 전 회장과 관련해, 최대 쟁점으로 꼽혀 온 '이희건 명예회장의 자문료 15억원 횡령'에 그가 직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라 전 회장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아직은 조사하고 검토할 게 많이 남아있다"고 밝혀 고심을 거듭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