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간 떠돌이 생활을 하던 50대 노숙인이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해 2년 만에 2,000여 만원을 저축했다. 이 노숙인은 경기도가 도내 쉼터 및 자활근로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노숙인 저축왕'에 선발돼 15일 상까지 받게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경기 수원시 리스타트(Re-start) 사업장에서 일하며 재활의 꿈을 키워온 김석준(52ㆍ가명)씨. 서울의 모 고교를 졸업한 김씨는 대학 진학에는 실패했지만 군 제대 후 조그만 사업을 하며 나름대로 순탄한 삶을 꾸려 갔다.
하지만 1995년 친구와 동업했던 의류 재포장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후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다방, 전자제품 대리점, 문구점 사업이 잇따라 실패해 순식간에 카드 빚이 5,000여 만원을 넘어섰다. 동거하던 여인과도 이 때 헤어졌다.
그때부터 잘 마시지도 못했던 술에 빠져 들었다. 유일한 벗인 줄로만 알았던 술은 점차 그의 영혼을 갉아 먹기 시작했다. 단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알코올 중독에 이르게 된 것. "술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당장의 괴로움을 잊어야 했기에 계속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김씨는 집 없는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다. 노숙인 쉼터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었다. 2003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3남1녀 중 장남인 김씨는 어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키지 못했던 게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이었다고 했다. "집도, 연락처도 없던 내게 동생들이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었어요. 돌아가신 뒤 한 달이 지나서야 우연히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절망 속에도 그의 가슴 한 켠에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병원을 찾아갔다. 알코올 중독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제발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해 행려 환자로 분류됐다. 그렇게 1년 반에 걸친 치료가 계속됐다.
그러던 중 재활 프로그램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2008년 3월 수원 리스타트 사업장을 찾아 자동차 부품을 제작ㆍ조립하는 일을 시작했다. 리스타트 사업장은 주 5일 근무라 주말과 휴일에는 건설 현장 막 노동일까지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 결과 올해 5월 권선구 세류동에 1,500만원짜리 전세방을 얻었다. 단칸방이지만 15년간 집 없는 고통과 설움이 뼈에 사무쳤던 김씨는 날 듯이 기뻤다. 전세 보증금을 내고도 그의 통장에는 679만원이 남아 있다.
"모든 일에 자신이 없고 자격지심만 가득했던 쉼터 생활보다는 떳떳하게 세금 내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지금이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물론 갈 길은 아직 멀다. 신용불량자 신분도 벗어나야 하고, 술과 무리한 작업 등으로 인해 나빠진 건강도 되찾아야 한다. 또 제 2의 인생의 목표로 삼은 귀농생활을 위해서는 농촌에 집도 필요하다. 김씨는 "잘 나가던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노숙 생활은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본 뒤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는다면 반드시 재기할 수 있습니다"며 활짝 웃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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