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산국회도 8일 어김없이 폭력사태로 마무리됐다. 협상파로 꼽히는 한나라당 김무성,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원내사령탑을 맡으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복원될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를 두고 국민들은 “국가위기 상황에서도 난장판 국회를 보여주는 여야 의원들을 생각하면 분노와 절망을 느끼게 된다”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비록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이 지났지만 다수 여당이 야당을 충분히 설득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 너무 서둘러 처리했다”면서 여당에 인내심과 소수 야당 존중의 자세를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또 “야당도 집권 경험을 갖고 있는 만큼 역지사지 자세로 예산안을 심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날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은 나라부터 살려야 한다”며 “올해만은 폭력국회를 피해주기를 바랐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전 의장은 “오직 국민의 국회라는 인식 하에 여당은 4대강 예산을 다소 삭감하는 성의를 보이고 야당은 국민이 납득할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여당의 정치력 부재와 야당의 대안 부재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은 예산국회 충돌 원인으로 한국 정당의 민주주의 훈련 부족을 꼽은 뒤 “민주주의는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민주 대 반(反)민주의 격돌 구도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는 것은 여야 모두의 책임”이라며 “여당은 무조건 야당이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인식하고 있고, 야당은 ‘여당 10년’의 경험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김무성_박지원 원내대표 조합으로 대화 정치가 복원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무리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예산안과 법안 처리 과정에서 원내대표의 소모품 같은 역할을 하는 게 문제”라며 “차기 대선주자는 물론 여당의 개혁성형 소장파와 야권의 비주류 의원들은 정치개혁에 대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 처리 법정 시한 등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예산안 데드라인을 늦춘 뒤 그래도 여야 합의가 안 되면 투표로 결정한다는 식으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도 “예결특위를 상설화해서 상반기부터 예산심의가 가능하도록 해 졸속 처리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야 내부에서도 비판과 자성의 말이 나왔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 충돌이 되풀이되는 데는 청와대 책임도 상당히 있다”고 말했다. 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야당 역시 국민 살림살이인 예산안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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