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다시 이 모양 이 꼴이다. 총액 309조 567억원의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법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한 어제 국회의 모습은 세월과 민심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변함없이 펼치는 추태와 다름없다. 연말이면 으레 보던 장면 그대로다.
재작년 말에서 지난해 초에 걸쳐 대형 해머와 전기 톱, 소화기 등이 동원된 국회 폭력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또 다시 여야의 물리적 충돌로 창유리가 깨지고, 의원과 보좌관이 다치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여당의 예산안 단독처리 움직임에 맞선 정당한 실력행사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사실상의 예산안 심의 거부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 당연한 결과이기라도 하듯, 야당의 본회의장 및 의장석 점거, 여당의 탈환, 여당 단독의 표결처리가 순서대로 진행됐다.
조금 달라진 게 있긴 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낳았지만, 앞의 국회 폭력으로 여야 의원 4명에 벌금형이, 야당 당직자와 보좌진에 실형이 선고된 것이 그나마 효과를 발휘했는지, 몸이나 명패를 날려 의사진행을 막는 야당의원은 없었다. 플래카드나 고함으로 의지를 표명하긴 했지만 비장하거나 긴박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차피 여당의 의사대로 예산안과 법안이 처리될 것인 만큼, 최대한 저항했다는 흔적이라도 남겨놓자는 태도에 가까웠다.
예산국회가 이렇게 끝나고 보니 그 동안의 여야 대치로 국민이 무엇을 얻었는지 허망하고 안타깝다. 확정된 내년 예산은 애초의 정부안보다 3조원이 늘었다가 마지막에 여당이 선심 쓰듯 5,000억원 가까이를 줄였다. 예산 심의가 삭감 총액이 아니라 구체적 삭감 내용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상식에 비추면,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예산심의권이 부끄러울 만하다.
그나마 결산 심사라도 엄격하다면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예산안 심의보다 더 엉성한 실정이니, 국민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찮다. 사업예산을 둘러싼 정치공방보다 모든 항목을 회계논리로 꼼꼼히 살피는 예산안 심의가 중요함을 도대체 언제쯤이면 여야가 함께 깨달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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