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째 간경화로 투병 중인 박모(53)씨는 지난해부터 병세가 나빠져 급기야 간 이식밖에 방법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대학생인 아들이 선뜻 간을 기증하겠노라 나섰지만 박씨는 차마 수술을 결심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무엇보다 젊은 아들의 건강이 염려스러웠고, 몸에 큰 상처를 남기는 것도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설득으로 수술하기로 결정한 날, 박씨는 집도의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아들의 배를 크게 가르지 않고 복강경으로 간을 떼내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대에 누울 수 있었다.
간 기증자 수술 흉터 없앤 복강경 간 이식 수술
지난 3월 16일 오전 8시. 박씨의 아들이 먼저 수술실로 갔다. 한호성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아들의 배에 0.5㎝ 정도의 구멍 5개를 뚫고 카메라와 수술기구를 넣었다. 정면의 모니터에 아들의 건강한 간이 선명히 비쳤다. 한 교수는 모니터를 보며 5시간 동안 집도한 끝에 이식에 필요한 아들의 간 우측 60%를 성공적으로 잘라냈다. 세계 최초로 간 이식을 위해 간 우엽을 복강경으로 떼내는 내는 순간이었다.
건강한 성인인 기증자의 간을 떼내는 것은 간암 복강경 수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다. 남기는 간 조직과 떼내는 간 조직 모두 혈관과 담도를 손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떼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어느 의사도 성인 간 이식의 모든 과정을 복강경수술로 시술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한 교수가 그 일을 세계 최초로 해낸 것이다.
한 교수는 마치 제왕절개수술을 하듯이 복부의 가장 아래쪽을 12㎝ 잘라 절제한 간을 복부 밖으로 꺼냈다. 개복해 간을 꺼냈더라면 복부 한가운데 40~50㎝의 큰 상처가 남았겠지만, 박 씨의 아들에게는 팬티라인으로 가려지는 가로 12cm의 작은 흔적만 남았다.
떼낸 간은 옆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유석·조재영 교수가 박 씨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했고 기증자인 아들은 1주일 만에, 수혜자인 박 씨는 보름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아들의 경우 개복 수술을 했더라면 2주 정도 입원했어야 했는데, 복강경수술을 한 덕분에 입원기간을 5일 이상 줄일 수 있었다.
한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공여자의 수술 흉터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간 이식의 가장 중요한 숙제인데, 복강경수술이 좋은 해법이 될 것”이라며 “성인 간 이식까지 복강경이 적용될 만큼 복강경수술의 성역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2003년에는 간암 환자에게 복강경 우후구역 절제술을, 2004년에는 어린이환자에게 복강경 간 절제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으로 이끌었고, 국내 처음으로 췌장암 환자에게 복강경수술을 시행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복강경수술 부문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수술 부위 줄이는 복강경 위암 수술기법 개발
암 수술 중에서 복강경이 가장 활발히 적용되고 있는 분야는 위암수술이다. 건강검진 활성화로 위암의 조기 발견이 늘면서 복강경수술도 늘어나는 추세다.
복강경 위암 권위자인 김형호 외과 교수팀은 2003년부터 최근까지 1,500여건의 복강경 위암 수술을 시행했지만 수술에 따른 사망은 단 1건도 없었다. 수술 부위 감염, 출혈 등 수술에 따른 합병증 발생률도 11%로, 개복 수술의 15%보다 적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 외과에서는 위암의 60% 이상을 복강경으로 시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복강경수술은 절개 부위가 작아 통증이 적고 회복기간이 빠른 것이 장점”이라며 “위암의 경우 개복수술하면 식사하기까지 4~5일 정도 걸리지만 복강경은 2~3일밖에 걸리지 않고, 장이 수술 부위에 들러붙는 유착 같은 합병증도 적다”고 말했다.
현재 위암 수술은 암 조직이 있는 위뿐만 아니라, 위 주변의 림프절도 함께 잘라내고 있다. 조기 위암환자의 경우 림프절로 전이되는 비율은 최대 20%에 불과하다. 그러니 나머지 80%의 환자는 필요 없이 림프절 절제술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 전에 림프절 전이를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이 없어 불가피하게 림프절을 자르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복부의 절개선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수술 범위를 줄여야 진정한 최소침습수술”이라며 “복강경 수술과 접목해 수술 전이나 수술 중에 림프절 전이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조만간 이 연구 결과가 나오게 되면 조기 위암 수술법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직장암 복강경 수술 안정성 세계 최초 입증
최근 들어 복강경이 외과 수술영역에서 보편적인 수술법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직장암 수술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직장암 수술에 성공하려면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고 항문괄약근을 보존할 수 있어야 하며, 배변기능이나 배뇨기능, 성기능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직장이 있는 골반은 공간이 좁아 복강경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그 동안 직장암은 복강경 수술보다 개복 수술이 더 안전하다고 여겨졌다.
강성범 외과 교수가 이런 상식을 뒤집었다. 그는 지난 2006년 4월부터 2009년 8월까지 오재환 국립암센터 박사, 정승용 서울대병원 교수 등과 공동으로 직장암 환자 340명을 대상으로 해 직장암 복강경 수술의 안전성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강 교수는 “지난 3년 간의 연구로 직장암에서도 복강경 수술이 개복 수술에 비해 안전성이 떨어지지 않고 수술 후 통증이 적을 뿐만 아니라, 장 운동의 회복시간이 빠르고 수술 후 삶의 질도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현재 직장암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배뇨기능 장애나 성기능 장애를 조기에 회복할 수 있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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