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안보 분위기와 어울리게 표현하면, 서울중앙지검은 검찰의 최정예 부대다. 부대원 규모, 전투 능력 및 경험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그런 이유로 역대 정권은 늘 서울중앙지검장에 '자기 사람'앉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행여 지검장이 딴 마음을 먹으면 심각한 위협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짐과 달리 비리 척결에 소극적
반대로 적절한 관리와 통제가 이뤄지면 정권의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서울중앙지검장을 임명할 때는 능력 못지 않게 '지연ㆍ학연'이라는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충성 보증 수표가 잣대로 활용됐다. 인사 불만과 잡음이 생기면 '검사장 이상 간부라면 능력에 큰 차이는 없다'거나 '과거의 잘못된 인사의 균형을 잡은 것이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은 달랐다. 그는 능력을 인정 받은 검사였다. 법무부 검찰3과장, 대검 공안1과장, 대검 공안부장 등 정통 공안 검사로서 요직을 거쳤다. 언론 프로필에 따르면 청렴ㆍ강직ㆍ자상한 성품에 뛰어난 상황 분석 능력까지 갖췄다. 될 만한 인물이 됐다 싶었다. 출신지(경북 상주), 출신학교(고려대)가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이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그의 행보는 능력 있는 검사에게 거는 국민적 기대나 바람과 자꾸 엇나갔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대검 범죄첩보보고서 공개 등으로 대통령 사돈 기업인 효성그룹 비리 부실 수사 의혹이 커졌는데도 수사 확대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나중에 검찰총장 지시로 해외 부동산 매입 자금 출처 조사에 나서긴 했다.) 임천공업 비자금 사건 때는 대통령 친구이자 실세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도피성 출국을 한 뒤에야 수사에 나서 출국 방조 의혹을 샀다.
또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 행정관의 대포폰 개통 및 대여 등 권력 비선 라인의 민간인 불법 사찰 개입 윤곽이 드러났는데도 지금껏 수사 확대 요구에 눈을 감고 있다. 최근에는 제 식구 감싸기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랜저 검사 무혐의 처리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책임지겠다"고 했다가 당사자가 승용차의 대가성을 인정하고 1,6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언론에 보도된 노 지검장의 발언으로 미뤄볼 때 그는 지금 법률가적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한 수사를 놓고 세상이 가혹하게 평가하는 데 대해 억울한 심경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책임이 크다. 그는 취임사에서 "위법과 반칙에는 법의 이름으로 반드시 책임을 물어 불의가 결코 용납되지 않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권력에 약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10 차례 이상 압수수색을 한 한화ㆍ태광그룹 수사와 비교해 봐도 취임 초 효성그룹 수사에 미온적이었던 그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능력과 상황 판단력을 갖춘 그가 왜 그랬을까. 과연 법률가적 양심만을 좇은 결과였을까.
책임 이전에 검사로서의 결기를
그는 당시 국감에서 "효성 수사는 할 만큼 다했다"고 했다. 검찰 구성원들은 그 발언의 행간에서 무엇을 읽었을까. 차기 검찰총장 후보라는 점과 함께 시선의 초점은 그의 능력이 아닌 출신 지역ㆍ학교로 옮겨갔을 것이다. 노 지검장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간파했을 것이다. 그 발언을 '중요 사건'에 대한 노 지검장의 의중 내지 지휘 방침으로 여겼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하지만 그런 해석 아니고는 천 회장, 대포폰 사건 등 권력 중심부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 처리 과정에 보여준 그의 소극적 행보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노 지검장이 "책임을 진다"면 비리 검사를 감싼 데 대한 책임에만 국한한 것이 되어선 안 된다. 그는 권력 주변 비리에 적극 대처하지 않아 국민 신뢰를 잃고 말았다. 그가 어떤 형태의 책임을 질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전에 한 사건만큼은 검사의 결기로 분명히 처리해줬으면 좋겠다. 대포폰 사건 말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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