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의는 내용면에서는 별다를 게 없다. 북한의 잇단 도발 규탄과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시기상조 입장 등을 담은 공동성명 내용도 지금까지 그대로다. 그러나 북한 도발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강도'는 과거에 비할 수 없이 단호해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워싱턴의 소식통은 "연평도 도발 와중에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4년 만에, 그것도 처음으로 워싱턴에서 열렸다는 자체가 주는 메시지를 봐야 한다"며 "3국이 흔들림 없는 공조를 과시한 것은 북한에 대한 가장 엄중한 경고"라고 전했다.
이날 회의가 연평도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됐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회의가 북한 도발로 동북아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 시점에 열린다"면서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묵념은 예정에 없었으나, 클린턴 장관의 즉석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는 그만큼 미국의 외교수장이 한국의 비극을 자신의 일처럼 위중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회의에서는 북한의 도발과 관련, 중국을 어떻게 북한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느냐에 초점이 모아졌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실질적 제동을 걸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고, 중국을 설득하지 못하면 언제든 추가도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전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이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중국에 대해 어떤 강도와 방법으로 3국 입장을 관철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반 중국 블록 형성' 같은 것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을 구석으로 모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오히려 북중 반발을 사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을 '압박'하기 보다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집중 거론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주 관련국을 순방하는 미 고위급 대표단의 일정에 중국이 포함된 것도 같은 뜻이다. 우리 정부 핵심당국자에 따르면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이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 것으로 알려졌으며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동행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회의에서 중국에 대한 톤을 조정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상식 이하의 '북한 감싸기'에 상당히 격앙돼 있다는 게 중론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행정부 고위관리를 인용, "중국의 북한 편애가 북한이 아무런 대가 없이 도발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중국 책임론을 지적한 뒤 "중국에 대한 미국 분위기가 악화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리의 말을 빌면 미중 관계가 최근 10년 내 최악 상황이라는 진단이 가능하다. 중국이 3국의 입장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미중 관계나 한반도 문제 등 동북아 정세가 요동칠 수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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