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요 정책 결정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집이 발간됐다.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원장 진영재)이 최근 발간한 은 한국 역대 대통령들이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해 어떤 식의 결정을 내렸는지를 보여주는 주요 문건들을 발췌, 영인한 자료집이다. 2006~2008년 국내외에서 수집한 40여만 건의 문건 가운데 852건을 선별했다. 3,084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다.
사료집은 모두 9권으로 이승만 관련 자료 3권, 박정희 관련 자료 5권, 김대중 관련 자료 1권이다. 김대중 관련 자료는 집권 이전인 1970~1983년의 것이다. 미국 트루먼도서관, 아이젠하워도서관, 국립문서보관소 등 미국 자료가 90% 이상이고 나머지는 국가기록원, 외교연구원 외교사료관 등에서 수집한 국내 자료다.
주한 미 대사관의 외교전문, 미 국무부 회의록, 아이젠하워의 서신, 박정희의 서신 등 다양한 자료를 중요 정책의제에 따라 통시적으로 정리한 것이 이 자료집의 특징이다. 이승만의 경우 한국전쟁 휴전 논의,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을 주제로 자료를 배열했고, 박정희의 경우 베트남전 파병, 남북회담, 유신체제 성립,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군 논의 등을 주제로 자료를 편집했다. 김대중의 경우 대통령선거(1971), 납치사건(1973), 사형선고(1980)를 중심으로 민주화운동과 박정희 정권의 대응을 분석한 미국의 보고서 등이 수록돼있다.
양승함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대통령의 국가 의제에 따른 한국현대사에 대한 이해와 재구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최규하,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 등에 관한 자료집도 발간한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승만 관련 자료 중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전쟁 휴전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6월18일에 열린 제150차 미국 국가안보회의 회의록이다. 이 회의 전날 이승만은 미국과 협의 없이 거제도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미국은 독단적인 이승만을 강제로 하야시키려는 ‘에버레디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 계획을 미국 중앙정보부를 중심으로 한 비선계획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자료집에 수록된 회의록에는“그(이승만)가 지속적으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향후에도 미국과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미국으로서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아이젠하워의 직접 언급이 포함돼 있다. 아이젠하워가 이미 이승만 축출 계획을 사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냉전시대에 미국은 최고지도자 수준에서까지 한국의 지도자가 미국의 정책 구상을 수행하지 않으면 제거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박정희 관련 자료로는 1968년 4월17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미 국무부의 회담록을 주목할 만하다. 격화되는 반전운동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려있던 존슨 당시 미 대통령은 한국군 6,000명의 추가 파병을 요청했지만, 박정희가 이를 거부하며 한미관계가 갈등을 빚었다. 이번에 공개된 회담록에는 “북한은 한국에서 제2의 베트남전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우리가 침투 게릴라들을 잡을 수 있지만, 그들이 전국에서 나타난다면 안보가 흔들리고 국민들은 불안해하며 경제 건설에도 방해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외국에 추가 파병을 할 수 있겠느냐?”는 당시 박정희의 발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박명림 교수는“박 대통령이 미국의 요청에 늘 종속적으로 순응해 베트남 파병을 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며 “당시 한국의 안보위기는 현재보다 심각했고 국력에서도 북한에 뒤처져 있었지만 박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를 당당히 거부한 사실은 대미 의존도가 강화되고 있는 최근의 한미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 선포에 앞서 이를 북한에 미리 통보했음을 암시하는 주한 미 대사관의 외교전문(1972년 10월25일)도 눈길을 끈다. 2009년 동구권 외교문서를 통해 이 사실이 공개된 바 있지만 미국 자료로는 처음이다. 7ㆍ4공동선언 등 당시 남북대화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유신체제 선포가 대북정책의 전환을 의미하지 않음을 북한에 보여주려는 박 정권의 의도를 나타내는 문건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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