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요금만 150만원이 나왔다. 건 적도 없고 받기만 했는데도 그랬다. 지난달 광저우아시안게임 여자 평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너무 좋아요"라며 펑펑 울었던 정다래(19)는 이후 도무지 끊길 줄 모르는 축하전화 릴레이에 현지에서 행복한 몸살을 앓았다.
귀국 후에는 더 심해 졌다. 방송 출연 요청만 줄잡아 20여건. 정다래를 10년째 지도 중인 안중택(43) 대표팀 코치의 휴대폰은 이곳 저곳에서 쇄도하는 섭외 요청으로 하루 100번 이상 울린다. 8일에는 청와대 오찬에도 참석해야 한다.
시상식 참석, 화보 촬영 등 하루 평균 3건의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정다래는 복싱선수 성동현도 못 만났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사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돌았던 '절친'이다.
한국 여자수영 사상 12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수영퀸' 정다래를 7일 소속 대학인 성남의 동서울대학에서 만났다. 10학번인 정다래는 레저스포츠 전공 시험을 치르러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역시나 그의 주변은 인산인해. 기념사진을 요청한 학생들은 정다래 바로 옆을 차지하려 몸싸움을 벌였다.
맘 비우고 나갔더니 덜컥 금메달
정다래의 아시안게임 출전 종목은 50m, 100m, 200m 평영과 팀 종목인 400m 혼계영. 앞선 종목에서 전부 4위로 메달권 진입을 눈앞에서 놓친 정다래는 마지막 종목인 200m에서 마침내 그냥 메달도 아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처음 태극마크를 단 이후 국제대회 첫 금메달이었다.
정다래는 "메달보다는 개인 최고기록에 초점을 맞추고 출전한 대회였다. 그런데 50m, 100m에서 기록이 잘 나와 메달권에 들 줄 알았는데도 못 들어 마음이 안 좋았다"면서 "200m 하나 남았을 땐 '마음 비우고 기분 좋게 헤엄치고 오자'는 생각으로 했는데 금메달이 나왔다"고 했다.
이와 달리 안 코치는 "가기 전부터 목표는 금메달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정)다래를 처음 봤을 때 발목과 허리 유연성이 좋아 무조건 평영 선수라고 못박았다"는 안 코치는 "천재도 아니고 순전히 노력형"이라고 정다래를 평가했다.
구두가 너무 불편해요
깨끗한 구두를 연방 신었다 벗었다 했다. 굽도 없는 구두인데 많이 불편했나 보다. 정다래는 "운동화밖에 없다. 구두는 이거 한 켤레"라고 했다. 물밀듯 들어오는 행사에 얼굴을 비추느라 모처럼 구두를 꺼내 신었는데 양 발목 뒤가 벌써 엉망이 됐다.
여수 집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도 했다. 염색도 하고 예쁘게 다듬기도 했다. 안 코치는 "지난주 토요일에 고향인 포항에 가면서 '집밖으로 나서면 무조건 전화해라'했는데 머리를 하고 왔더라. 그런데 색깔이 잘못 나왔다고 입이 나왔더라"고 했다. '여수의 딸'이 된 정다래는 문을 나서면 이내 난리가 난다.
내년 7월 상하이세계선수권은 기대 마라
'얼짱', '4차원' 등 별명이 "마음에 안 든다"는 정다래는 자신이 '운동선수'임을 강조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영 이외의 길은 생각도 해 본 적 없다"는 그는 "여자선수는 생명이 짧다고 하는데 힘닿는 데까지 뛸 계획이다. 은퇴 후에도 수영계에 머물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인기가 어마어마해 졌지만,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은 물이라는 걸 정다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정)슬기언니랑 경쟁해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 언니가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거예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여자 평영 200m 동메달리스트 정슬기(22ㆍ연세대)는 정다래 이전 한국 여자수영의 자타공인 에이스였다. 정다래는 "언니가 이번엔 아파서 못 나왔지만, 앞으로도 그 언니를 보고 따라갈 것"이라고 했다.
확실한 경쟁자를 둔 정다래의 다음 목표는 물론 내년 7월 상하이세계선수권대회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의 메달 획득이다. 그러나 안 코치는 "내년 세계선수권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선을 그었다. "파워 위주로 힘의 절대치를 늘릴 계획이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의 강자들을 상대하기 힘들다. 파워가 약하면 작전도 많이 못 쓴다. 영법 수정은 결국 올림픽을 목표로 한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대망의 올림픽 메달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가 있기에 세계선수권에서는 당장의 성과를 바라지 않는다는 얘기다.
안 코치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정)다래는 아직 근력도 갖춰지지 않은 여물지 않은 선수다. 파워와 함께 배짱도 키운다면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성남=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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