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스쳐간 자리는 참혹했다. 애지중지 키우던 소와 돼지가 집단으로 살처분된 후 축산농가에는 텅빈 우리만 남아 있었다. 가끔씩 옆을 지나치는 농민들은 가슴이 답답해 화병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경북 안동시 와룡면 서현양돈단지에서 구제역이 최초 확인된 지 10일째인 7일 풍산읍 괴정리 신모(56)씨 돼지농장. 1만2,000여마리의 돼지를 키우던 이곳은 3일 인근 농장에서 구제역 양성판정이 난 후 위험지역 안에 든 탓에 한창 살처분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이날도 자신이 키우던 돼지가 죽어 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던 신씨는 “30년 가까이 돼지를 키우면서 어려움도 숱하게 겪었지만 이번처럼 한꺼번에 만 마리가 넘는 돼지를 살처분한 것은 처음”이라며 가슴을 쳤다.
서현단지에서 26.8㎞ 떨어진 경북 예천군 호명면 박모(41)씨 한우농장도 초상집이었다. 4일 구제역 양성판정으로 소 45마리를 떠나 보낸 박씨는 한숨만 내 쉬었다. 인근에서 돼지를 키우는 이모(45)씨는 “구제역이 발생한 후에도 안동시 쪽 사료 차량이 버젓이 우리 지역을 돌아다녔다”며 지자체의 방역 불감증을 탓했다.
안동시에서 첫 발생한 구제역은 예천군을 넘어 영양군에서까지 확인되면서 인근 지역 축산농가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예천군 유천면 한우사육농가 정후섭(47)씨는 인근 농장주와 함께 농장 주변과 농로 등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정씨는 “농가마다 한 사람씩 지정, 철야로 소 우리를 지키고 있다”며 “전기검침원이나 사료차량 출입도 못하게 할 정도로 초비상 상태”라고 말했다.
농장 두 곳에서 구제역 음성판정을 받은 영주시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산면 축산농가 밀집 지역의 경우 농민들이 자체 통제선을 설치, 방문객과는 전화로 통화하고 물품은 통제선 바깥에서 주고받을 정도다. 여기다 옥녀봉과 한티재 등 예천군과 이어지는 도로 3곳도 6일부터 폐쇄했다.
이날 안동 시내에는 남서풍이 초속 3m로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4.4도까지 내려가는 등 갑자기 강풍과 추위가 닥치면서 방역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동통제소와 살처분 농장 등 방역 현장에서는 공무원은 물론, 의용소방대 농업인 택시기사 등 2,300여명 규모의 대규모 방역 인력이 흰색의 방역복을 입고 교대로 구제역 확산 저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한편 이날 새벽에는 안동시 녹전면 방제초소에서 밤샘 근무를 하다 쓰러져 6일간 의식을 찾지 못하던 시 공무원 금찬수(50)씨가 끝내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구제역 여파로 지역 경제는 그로기 상태다. 안동시 하회마을은 하루 평균 1,500여명이 찾았으나 최근 500여명 규모로 줄었고 풍산읍 한우먹거리타운에도 손님이 80% 정도 급감했다. 인근 상주시 역시 이달 말 열기로 한 삼백고을축제를 취소하는 등 경북 북부 지역의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박순보 도 농수산국장은 “구제역 바이러스 잠복기를 감안할 때 이번 한 주가 최대 고비”라며 “방역망이 뚫리지 않도록 인력 장비 약품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권정식기자 kwonjs@hk.co.kr
예천=이용호기자 ly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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