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정부 '韓美 동맹 올인'… 中의 北 편들기·외교 무례 불러
#중국 외교를 담당하는 최고위급 인사인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국무위원은 지난달 27일 당일에 한국 방문을 통보하고 이명박 대통령 면담까지 요구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다이빙궈 국무위원이 다음날인 28일 이 대통령과 면담하고 귀국하자마자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 개최를 제안하며 우리 정부의 뒤통수를 쳤다.
#다이빙궈의 방한 충격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29일에는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미국 국무부의 외교 전문을 공개하면서 한국 외교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의 고위 외교관들이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들과 가진 면담에서 국가기밀을 비롯한 대북 관련 정보를 털어놓은 사실이 밝혀졌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외교차관 시절인 지난 2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중국의 6자회담 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에 대해 ‘가장 무능한 관료”라고 혹평했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두 사건으로 인해 외교가는 발칵 뒤집혔다. 지나치게 한미동맹에 치중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다뤄온 한국 외교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상대로 하는 주변 4강 외교 중 절반 이상을 한미 관계에 집중했다. 노무현정부가 다른 정권에 비해 한미동맹 강화보다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춘 반면에 이명박정부는 대(對)중국 외교를 경시하고 한미 관계 복원에 주력했다. 정권 따라 외교 정책과 전략이 오락가락한 셈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 외교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의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단계로 악화됐다. 중국이 미국과 경쟁하는 G2 국가로 급부상함에 따라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서 미중 간의 패권경쟁은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미중 간 경쟁이 심화하면 한미동맹의 한 축인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때문에 더욱 지혜롭게 중국과의 관계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명박정부 외교팀은 한중 관계 증진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에서 보듯이 중국이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북한을 규탄하지 않고 오히려 편드는 일을 한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하지만 냉엄한 국제정치 환경에서 막대한 힘을 가진 중국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익혀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실상 한미동맹에 ‘올인’ 해온 한국 외교의 문제점은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이라는 안보 이슈가 터지면서 더욱 심화됐다. 외교 전문가는 “중국 정부가 잇따른 도발 사태에서 지나칠 정도로 북한을 감싼 것은 비판해야 하지만 우리 정부의 대미 편중 외교가 중국의 그런 행태를 조장한 측면이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 중국과 대치하는 양상으로 흐르다 보니 한일 관계는 상대적으로 다소 나아졌다는 분석이 있다. 냉전시대처럼 한국과 미국, 일본을 묶는 3국 공조 체제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 관계에 대한 평가에서는 엇갈린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한미와 북중 간의 대결 구도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對)미국 편중 외교에서 벗어나 한중관계를 복원하는 한편 러시아와 일본과의 관계도 잘 풀어가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주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 對中외교 해법은
“대(對) 중국 외교를 제로베이스에 다시 검토해야 한다.”
최근 중국과의 외교 관계가 삐걱거리면서 외교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중국의 위상과 역할이 급속히 변하는데도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중 외교관계가 수립된 1992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경제 및 국방 규모로 볼 때 미국과 함께 세계의 양대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국방비 규모는 지난해 593억 달러로 세계 2위 수준에 이른다.
외교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을 인정해 굳건한 한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대중국 외교의 비중을 점차 높여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과 지금보다 더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는 조언도 하고 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만큼 단기적으로 중국 관계를 180도 바꿀 순 없다”며 “한미 동맹관계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한중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 외교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중국의 국력이 커지자 미국은 과거 일본에 그랬던 것처럼 중국 길들이기에 나섰고 중국은 이에 강력히 맞서는 양상”이라며 “이런 구도에서 한국은 더욱 더 전략적으로 중국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도 지난 3일 대중 외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회통합위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근본 틀인 한미동맹을 존중함과 동시에 중국의 부상을 명백한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며 “공소한 이념이나 불모의 감정으로 대외 정책을 운영하는 것을 지양해 철저히 실사구시의 태도로 운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미동맹과 친중국 정책이 양자택일해야 하는 배타적 관계가 아니므로 양자를 잘 배합하는 유연한 외교전략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덕민 교수는 “한반도 정세는 결코 한미 대 북중 대결구도로 안정될 수 없다”며 “한국과 중국이 이해를 함께 할 수 있는 북한의 개혁ㆍ개방, 비핵화, 한반도 안정ㆍ평화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에 남북한 어느 한쪽을 택하라는 방식이 아니라 중국 국익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워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인호기자 yih@hk.co.kr
■ 美中 파워게임 속 방향타 있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후 한국 정부의 외교전선이 위기에 놓이게 됐다.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한국ㆍ미국∙ 일본 대 북한ㆍ중국‘의 대치 전선이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 일본과 함께 중국을 향해 “북한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촉구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중국은 지난달 27, 28일 다이빙궈 국무위원을 한국에 급파하는 등 6자회담 참가국들과 다양하게 접촉하면서 중재 역할을 하면서도 정작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서는 한국과 북한 가운데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는 이사국들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러시아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규탄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 개최 제의에는 동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역시 중립적 스탠스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대치 전선은 미국과 중국의 파워게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세계의 빅2로 부상한 중국에 대해 압박을 가하자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계기로 미국과 대치 전선을 형성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연평도 포격 이후 뚜렷한 외교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당장 쓸 수 있는 마땅한 카드가 없는 셈이다.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일어난 지 10여일이 지났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천안함 사태 당시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의 반대로 북한 소행으로 적시하지 못한 채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데 그친 뼈아픈 경험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앞으로 선택할 외교적 카드에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미국, 일본 등 주변국들과 함께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공동 대응에 나서는 한편 신중하게 유엔 안보리 회부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에서 보듯 한미일 3개국의 대북 제재 조치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정부 관계자는 “유엔 안보리 회부에 치중하기 보다 실질적 제재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촘촘한 대북 제재 조치를 취하기 위해 한미일 3개국이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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