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자주 찾아뵙지 못해 미안해요" 눈물바다 된 2년 만의 상봉
"우리 걱정하지 말고 잘 살아." "엄마 자주 연락드릴께요." 지난 9월29일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의 한 골목길이 울음바다가 됐다. 길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한 여성을 가운데에 두고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 여성은 한국으로 시집간 이주여성 롼화(阮華ㆍ39)씨. 롼씨는 2년 만에 얻은 열흘간의 귀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집을 나서던 길이었다. 2년 동안 부쩍 나이가 들어버린 버린 듯한 어머니, 자신보다 키가 더 커버린 딸을 연신 어루만지던 롼씨는 한참 만에야 이들의 손을 놓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롼씨의 마음은 무겁지만은 않았다. 지난 열흘 동안 새롭게 만들어낸 소중한 추억들이 가슴에 꽉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롼씨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2년이었다. 중국의 한 회사에서 경리 일을 보던 롼씨는 한국으로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당시는 한중 인력교류가 급증하기 시작했던 무렵이었다. 그는 경기 의정부시에서 2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돈도 어느 정도 모았다. 당시 한국에서 일했던 외국인 중 차별대우와 부당한 처사에 앙심을 품고 귀국한 사람도 상당수였지만 다행히도 롼씨는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졌다.
그는"구체적으로 뭐가 더 좋은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한국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2년 동안의 타지 생활은 중국인 남편과의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었다. 이들은 자주 다퉜고 결국 이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남편은 혼자 떠나버렸고, 롼씨는 딸과 함께 부모님에게 몸을 의탁해야 했다. 상황이 나빠지자 한국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이 때 운명처럼 나타난 사람이 바로 지금의 한국인 남편 A(43)씨다. 나이가 차도록 배필을 만나지 못했던 A씨는 2008년 신붓감을 찾아 중국으로 왔고 지인의 소개로 롼씨를 만났다. 둘은 첫 눈에 호감을 가졌다. 롼씨는"무엇보다도 사람이 착하고 성실해 보였다"며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둘은 결혼을 약속했고 롼씨는 2008년6월 그리워하던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그리고 4개월 뒤 A씨와 결혼을 했다. 경남 거제시의 대형조선소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롼씨도 거제에 정착했다. 롼씨는 거제에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한 굴국밥 전문식당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6일, 저녁 5~10시까지 일하는 격무지만 그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롼씨는"남편은 물론, 시어머니와 시댁의 가족들이 너무 잘해준다"라고 수줍게 말했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딸과 전화 통화라도 하고 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직접 얼굴을 부비고 싶었다. 어머니에게도 행복한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고향을 방문하기는 어려웠다.
이 때 삼성중공업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9월2일 거제 지역 결혼이민 가족의 친정나들이를 위해 후원금 5,000만원을 기부했다. 롼씨와 남편은 이 자금으로 친정나들이를 하게 된 14가구 41명에 포함됐다.
롼씨는 지금도 그 때의 기쁨이 떠오르는 듯"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기뻤죠. 삼성중공업에 정말로 감사드려요"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과 함께 9월19일 고향을 찾아 가족들과 눈물의 상봉을 했다.
롼씨는"2년 전 키가 160㎝ 정도였던 딸이 172㎝로 훌쩍 자랐더라"고 전했다. 꿈같은 열흘이었다. 특히 이 기간은 추석 명절 기간이라 롼씨에게 더욱 의미가 깊었다. 롼씨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가족들과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짧은 일정이지만 여행도 했다. 롼씨 가족은 인근 대도시인 칭다오(靑島)를 찾아 유명 관광지를 구경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롼씨는 이제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한국 국적도 취득하고 싶고 아이도 갖고 싶다. 국적법에 따르면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결혼 후 2년 동안 우리나라에 주소를 두고 계속 살아야 국적 취득이 가능하다. 롼씨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신분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돼 있다고 말한다.
그는"몇 번 구직광고를 보고 문의를 했지만 외국인은 안 된다고 해서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왜 안 된다고 하더냐"는 질문에 힘없이 웃으며 "이유는 더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안 물어봤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낙담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남편과 시댁의 보살핌 속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기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이나 거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의 지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앞날도 어둡지 않다. 롼씨의 한국어는 꽤나 유창한 수준이다. 한국 국적도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부에게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아기도 가질 예정이다. 롼씨는 "아기가 생기면 더 바빠지겠지만 그래도 꼭 아기를 갖고 싶어요.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 삼성중공업의 다문화 지원활동
삼성중공업의 다문화가정 지원 프로그램은 이들의 생활에 실제로 보탬이 되는 실용적 프로그램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롼화씨의 경우처럼 고향 방문이 어려운 결혼이주자들에게 꿀맛 같은 고향방문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롼씨가 고향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9월초 삼성중공업이 거제시에 5,000만원을 기탁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과 거제시는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가정 14 가구 41명을 선정해 고향방문 기회를 제공했다.
삼성중공업은 2008년10월에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향을 찾지 못하는 다문화가족을 위해 '결혼이민자 고향 보내기 걷기대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를 통해 마련된 900여만원은 다문화가족 2가구의 고향방문 비용으로 사용됐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3쌍의 다문화 부부들에게 합동결혼식을 올려줬고, 호텔 숙박권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 다른 특징은 단순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 삼성중공업은 사원들의 모금으로 1억1,000만원의 '결혼이민여성돕기 성금'을 마련한 상태다. 이 자금은 삼성중공업과 거제시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의 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 사업이 거제시 소속의 지도사 25명이 한국생활 1년 미만이면서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의 다문화가정을 찾아가 육아와 한글을 가르치는 방문교육 사업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도사 양성비와 교재비, 한국어 시험 응시료 등 4,100여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는 거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연계해 결혼이주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퀼트 및 홈패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강자인 10명의 결혼이민여성들은 연말까지 쿠션, 여행가방, 지갑 등 판매 가능한 상품을 직접 제작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은 공업용 재봉틀 5대를 기증한 데 이어 작업장 마련에 필요한 모든 부대경비도 부담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참사랑봉사단'의 활동이다. 참사랑봉사단은 삼성중공업 임직원 부인들로 구성된 봉사활동단체. 1995년 결성돼 현재 270여명의 회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봉사단원 중 19명은 지난 4월 베트남과 필리핀, 중국 등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과'친정어머니 맺어주기' 결연을 했다. 이들은 이주여성들의 '한국 엄마'가 돼 이들이 한국에 살면서 겪는 문화 차이와 자녀 양육, 한국 음식 만들기 등 각종 어려움을 상담을 통해 해결해주고 있다.
참사랑봉사단은 또 이주여성들과 함께 장애시설과 노인복지시설 등을 방문해 목욕봉사와 텃밭 가꾸기, 시설보수 등의 봉사 활동도 벌이고 있다. 다문화 가정 여성들을 도움을 받는 존재에서 봉사활동의 주체로 만들어 남을 돕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거제에는 현재 중국, 일본, 베트남 등 16개국 890여명의 여성결혼이민자가 거주하고 있다"며 "이들이 한국에 애정을 갖고 잘 정착해 당당한 한국인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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