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를 두고 전문가들은 "유럽연합(EU)도 자동차 부문에서 추가 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재협상 최악의 결과물로는 자동차 관세철폐 연장과 특별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꼽았고, 쇠고기는 별도 채널을 통해 논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본보가 6일 통상 전문가 6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문항별로 짚어봤다.
이익의 균형?
이번 재협상 결과를 놓고 '이익의 균형'이 이뤄졌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애초 미국측 요구에 따라 시작된 것인 만큼, 불균형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가 처음부터 관건이었던 셈. "장기적으로 보면 균형 맞춘 것"(이창우 한국FTA연구원장)이란 시각도 일부 있지만, 전반적 평가는 비판적이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재협상 결과만 놓고 보자면 내준 것에 비해 받은 것이 너무 미미하다"고 평했고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소 한 마리 주고 닭 한 마리 받은 격"에 비유했다.
최악의 결과물은?
미국측에 양보한 것 중에 최악은 자동차 관세철폐 연장이 꼽혔다.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는 "한미 FTA 최대 성과인 자동차 관세철폐를 유예한다면 FTA 효과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신범철 경기대 교수는 "관세철폐 유예로 현지생산이 늘어날 경우 미국 일자리는 늘고 우리 일자리는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특별 세이프가드를 최악으로 꼽은 이들도 많았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큰피해가 없더라도 부끄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독소조항은?
전문가들은 한미 FTA의 최대 독소조항으로 기존 협정문의 스냅백(snap back) 조항을 꼽았다. 스냅백이란 협정위반 등의 경우 6개월 안에 관세 혜택을 철회할 수 있는 장치. 이해영 교수는 "세계 통상 역사상 이렇게 파렴치한 조건을 받은 곳이 없다"고 했고, 정인교 교수도 "다른 어떤 FTA에도 없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자동차 특별세이프가드 ▦환경ㆍ안전기준 예외 인정 ▦기존 협정문의 투자자-국가제소제(ISD) 등도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적됐다.
한ㆍEU FTA 파급효과는?
미국과의 FTA 재협상결과는 EU측을 자극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 "환경ㆍ안전기준 등에 예외규정을 둔 데 대해 유럽측도 요구가 있을 것"(김형주 연구위원) "이탈리아의 피아트가 미국 크라이슬러 지분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얽혀 있어 여기 해주면 저기서도 해 달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이해영 교수) 는 지적이다. 이창우 원장도 "EU측이 최혜국대우를 요청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정인교 교수는 "업체들이야 불만이 많겠지만 공식 추가 협상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측 성과는?
우리측 최대 성과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 "굳이 꼽자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만큼 내세울만한 성과가 없었다는 얘기. 그래도 가장 많이 꼽은 것이 의약품 허가ㆍ특혜 연계 의무 3년 유예다. 그 조차도 신범철 교수는 "우리 의약품 시장이 워낙 취약하기 때문에 아예 제외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돼지고기를 꼽은 이들 역시 "EU와 FTA가 체결되면 미국 돼지고기 수입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우리에게 거의 도움이 안 된다"고 평했다.
주재원의 비자(L-1) 유효기간 연장 조치에 대해서는 "이게 무슨 성과라고 할 수 있느냐"는 냉혹한 비판이 쏟아졌다. 김형주 연구원은 "3년 동안 한 번만 국내에 들어왔다 가면 비자 연장이 가능하지 않으냐"고 했다.
쇠고기는?
누구도 이번에 우리 정부가 쇠고기를 완전히 지켜낸 것이라는 평가를 하지 않았다. 결국은 별도 채널을 통해 협상이 되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대다수였다. 이해영 교수는 "미국측의 쇠고기 관세철폐 시기 단축 요구는 FTA 사안이라 힘들겠지만 검역방식 변경이나 가공품 수입 등을 줄기차게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신범철 교수도 "미국에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비준은 어떻게 될까?
전반적인 혹평에도 불구하고 FTA 비준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절대 비준해주면 안 된다"(이해영 교수) "빠를수록 좋다"(이창우 원장)는 양 극단도 있었지만, 대부분 중립적인 견해를 보였다. 신범철 교수는 "쇠고기 협상 결과를 본 뒤 비준해줘도 늦지 않다"고 했고, 백일 교수는 "재협상에 따른 파급 효과에 대해 국회에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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