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릴 듯한 태도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어깨를 누르는 수준의 폭행ㆍ협박도 강간죄 성립요건에 해당한다는 서울고법의 재정신청 인용 결정에 따라 기소된 강간사건 피고인에게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김현미)는 강간치상죄로 기소된 아이스하키 감독 문모(41)씨에 대해 "항거불능 상태에서 성관계를 맺은 것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같이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유부남인 문씨는 2008년 10월 총각행세를 하며 김모(35)씨와 교제하던 중 "용변이 급하다. 결혼과 관련해 긴히 할 얘기도 있다. 네가 싫어하면 성관계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김씨를 모텔로 데리고 가 성폭행한 혐의로 김씨에 의해 고소당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검이 문씨를 불기소 처분하자 김씨는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했다. 고법은 "남녀의 신체적 차이와 피해자의 명백한 거부의사 등을 고려할 때 당시 문씨의 행위는 강간죄 성립요건에 해당한다"고 결정했고 문씨는 기소됐다. 고법이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는 고소인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이면 검찰은 피고소인을 의무적으로 기소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모텔에서 문씨가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김씨는 혼자 있는 동안 도망치지 않았고, 문씨가 김씨의 옷을 벗길 때 '(성관계를) 안 할거야'라는 말을 했을 뿐 저항하지 않은 점, 성관계 중 애무시간이 40~60분으로 짧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항거불능 상태의 성관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상 강간죄는 가해자의 폭행ㆍ협박으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가 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여야 성립한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김씨는 문씨가 무서운 얼굴로 '너 계속 이렇게 피곤하게 굴거야'라고 말한 것을 때리겠다는 의미로 인식했다고 주장하나, 문씨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고 당시 상황을 보더라도 해악을 암시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며 고법이 김씨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주요 근거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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