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는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승리한 전쟁입니다. 그걸 기억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발벗고 나서고 있어요. 당사자인 한국인들은 가만히 있는데 말이죠."
지난 달 23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희(79) 재향군인회 미 동부지역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속 깊이 쌓아둔 말을 쏟아냈다. 간만에 찾은 고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뿌듯할 법도 하건만 웬일인지 노병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국에서 많이들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데 내 한계를 생각하니 밤에 잠이 안 와요. 이렇게 빈 손으로 돌아가면 안 되는데."
이 회장은 워싱턴D.C에 6ㆍ25참전기념 추모의 벽을 건립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용사 19명의 동상과 미군의 활약상을 그린 벽이 하나 있지만 주변에 있는 2차대전이나 베트남참전기념 조형물에 비해 작고 참전군인들의 이름이 빠져 있어 초라하다는 것이다.
이에 번듯한 추모의 벽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미국 내에서 번졌다. 6ㆍ25참전용사로서 대표적 지한파 의원인 민주당의 찰스 랭겔, 공화당의 샘 존슨 의원 주도로 올해 안에 관련 법안도 통과시킬 예정이다. "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추모의 벽을 설계하고 관련 위원회 승인절차를 밟는 등 사전작업을 해왔어요. 그 얘기를 듣고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데 라는 자책감이 들더군요."
추모의 벽은 어떤 의미일까. "미국에는 지방마다 6ㆍ25참전 기념비가 있어요. 수백 개나 되죠. 하지만 국가에서 인정한 조형물은 이곳 하나뿐입니다. 또한 전세계에서 워싱턴D.C를 찾는 사람이 연 300만명이 넘으니 6ㆍ25전쟁을 제대로 알리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죠."
문제는 돈이다. 유엔군 미군 카투사 한국군 등 전사자 수만명의 이름을 새겨 놓은 길이 146m, 높이 2.4m의 추모 벽을 만드는데 1,000만달러(약 100억원)가 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2013년 7월 27일 휴전협정 60주년에 맞춰 완성할 예정이어서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이 회장은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정부나 의회 차원에서 모금을 못하게 돼 있어요. 결국 돈은 우리가 내야죠. 현재의 6ㆍ25 조형물을 15년 전에 만들었는데 1,200만달러가 들었어요. 상당액을 국내 대기업들이 기부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번에 한국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다만 국방부 초청으로 8일간 안보현장 견학을 온 터라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자손대대로 가치 있는 조형물을 만들자는 취지에 다들 공감했어요. 하지만 구심점이 없다 보니 아직은 관심 수준입니다. 저 같은 늙은이가 뭘 하겠어요,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적극 나서줘야 하는데."
다행인 건 한국의 높아진 국격이다. 그는 언제든 계기만 주어지면 전국민적인 모금운동으로 번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고 한다.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가 죽어도 어디 그냥 보내나요, 심지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들이잖아요.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듯 국민들이 결집하면 이번 모금운동도 잘 될 거라 믿습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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