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으로만 보자면 주고받기 식 협상이었다. 자동차를 양보하는 대신에 돼지고기, 의약품, 비자 등을 얻었다. 정부 주장대로 얼추 이익의 균형이 맞은 게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양보한 것은 연간 50억달러 안팎의 수출시장(한국산 자동차)이었고, 그 대가로 지켜낸 대표적인 것은 고작 1억7,000만달러 수입시장(미국산 냉동 돼지고기)이었다. 규모의 차이가 무려 30배가 넘는다. 정부는“우리의 일방적 양보라는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이익의 균형추가 심하게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는 냉혹한 비판을 쏟아냈다.
자동차, 내줄 건 다 내줬다
자동차는 우리 정부가 누차 내세웠던 한미 FTA의 최대 성과물이었다. 2007년 4월, 김종훈 당시 한미 FTA수석대표(현 통상교섭본부장)는 “주력 수출품인 3,000cc 이하 자동차에 대해 이번 협상 결과로 즉시 관세가 철폐된다”며 협상 결과를 자찬했다.
하지만 3년 8개월 뒤 재협상에서 협상 대표로 나선 김 본부장이 직접 그 성과를 미국측에 고스란히 반납하고 말았다. 관세철폐 시한 4년 연장. 두 나라 FTA가 체결되면 한국산 자동차가 자유롭게 미국땅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문턱을 4년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김 본부장은 “우리도 동시에 같은 혜택을 얻었다”고 했지만,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수입이 연간 1만대에도 못 미치는 걸 감안하면 아전인수격 해석에 가깝다.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자동차 관세도 고무줄처럼 조정됐다. 미국이 지키고자 한 화물트럭의 관세철폐 시기는 연장하고, 반면 미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전기자동차는 관세철폐 시기를 대폭 앞당겼다.
이번에 신설된 자동차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역시 수출이 많은 우리측에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현지생산이 늘고 있어 세이프가드 발동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지만, 독소조항이 될 소지는 다분하다. 신범철 경기대 교수는 “적어도 자동차 분야에서만큼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대부분 내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익의 균형은 없었다
우리가 얻은 것은 돼지고기, 의약품, 그리고 비자 등 3가지. 큰 걸 내주는 대신,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 여기저기서 조금씩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얻어낸 이익의 규모를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자동차에 비해서는 매우 미미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나마 냉동 돼지고기 수입관세 철폐 시기 2년 연장을 얻어낸 것이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시장 규모가 2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의약품 허가ㆍ특허 연계의무 3년 연장을 얻어낸 것도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 신약 출시 비중이 낮은 국내 제약업계로서는 일단 시간을 벌긴 했지만, 3년 연장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연계의무를 아예 폐지했다면 모르겠지만 3년 유예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평가했고,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도 “이익의 균형이 현저히 깨진 협상”이라고 비판했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부가가치 측면에서 보자면 자동차가 농산물이나 의약품보다 훨씬 높지 않으냐”며 “2007년 협상과 비교하면 대폭 후퇴한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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