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재협상 과정을 복기해보면 한국은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정치∙안보적 환경 속에서 협상을 진행해야 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잇따른 북한의 도발과 이에 따른 한미동맹 강화 조치가 미국의 협상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한미동맹 강화와 안보를 위해 시장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겉돌던 FTA 재협상이 탄력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올 6월26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이 때 양국 정상들은 “11월 서울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 전 협상을 타결한다”고 시한을 못박았다. 그러나 이 회담에서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2012년4월에서 2015년12월로 늦춰줄 것을 미국측에 요구하는 아쉬운 처지였다. 미국은 한국측 요구를 수용했다. 5월18일 한미 정상간 전화통화는 이런 상황을 응축해 보여준다. 당시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한미동맹의 가치를 인식하게 됐다”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밝혔다.
이후 G20 정상회의(11월12~13일) 직전의 실무 협상도 한국의 부담감을 높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11일 청와대 정상회담 후 FTA 협상 타결을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상회의 개막 직전 정치적 파장이 큰 FTA를 타결하는 데 부담을 느낀 한국측 태도 등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해 미국 언론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11월30일 개시된 최종 협상도 연평도 도발의 영향권에 있었다. 도발 닷새 후인 11월28일 미국 항모 조지워싱턴호가 서해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하는 등 미국은 적극적으로 안보 조치를 취했다.
결국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협상 시한을 정한 것은 한국이 안보위기 상황에서 쫓기면서 협상해야 하는 궁색한 처지를 초래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5일 ‘FTA와 동맹문제를 동일 차원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경제적 논리로 시작한 이 협상이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협상 결과가 한미동맹 강화와도 관련이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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