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의 최대 희생양으로 지목되는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의외로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선 기대가 높았던 3,000㏄ 이하 자동차 관세 즉시 철폐는 물거품이 되어 아쉬움이 있지만 부품 관세의 즉시 철폐는 당초 안대로 유지돼 위안을 삼고 있다.
5일 협상 타결 소식을 접한 현대ㆍ기아차는 "그동안의 불확실성이 해소됨으로써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노진석 현대차 상무는 "부품 관세가 즉시 철폐됨으로써 중소기업의 부품수출이 늘고 이를 주로 사용하는 미국 현지 공장의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브랜드 인지도가 FTA 체결로 인해 더욱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경쟁 상대인 일본 업체와 좋은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이 회사의 미국 현지 생산 판매량은 지난해 21만여대에서 올해는 45만여대로 2배 이상 늘었다. 현지 생산분의 경우 주요 부품 대부분을 국내에서 수출하는 물량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미국 생산라인이 없는 기아차의 K5 등은 3,000㏄미만 자동차 즉시 관세 철폐가 재협상에서 사라져 아쉬워하고 있다.
또 미국측이 본격 판매를 앞두고 있는 GM의 가정전원용 하이브리드 전기차'볼트'를 의식, 친환경차의 관세철폐 시기가 10년에서 5년으로 당겨진 것도 별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다. 국내 전기차 시장 형성이 불투명한데다 5년 내에는 미국의 전기차 기술을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다는 것.
부품업계는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국내 완성차의 미국 점유율 확대나 미국 자동차의 국내 점유율 확대, 모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대모비스, 만도, 한라공조 등 우리나라 주요 자동차 부품사들은 미국 자동차 빅3에 대한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10~3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업체들은 FTA 체결시 국내 시장 공략에 고삐를 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연비, 온실가스 배출 기준의 완화 혜택을 볼 수 있는데다 가격 인하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소형차 라인을 강화한 포드는 장기적으로 큰 폭의 판매 신장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 미국 수입차는 6,000대 가량 팔릴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번 재협상으로 미국 차가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한-EU, 한-미 FTA를 지켜봤던 일본 업체들은 대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도요타와 닛산 등은 미국에서 생산된 자사 차량의 한국 수출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
한편 업계는 재협상에서 미국 측이 '픽업 트럭' 시장을 지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미국 픽업트럭 시장은 2004년 322만여대에서 지난해 146만대 수준으로 수요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빅3의 수익 창출원이다. 대당 가격이 고급 승용차 수준인 5만~7만달러에 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 시장을 도요타, 닛산 등 일본업체가 15% 가량 잠식하자 긴장한 빅3는 현대ㆍ기아차의 시장 진출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재협상이 당초 기대에서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FTA로 인한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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