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염무웅(69ㆍ사진)씨가 네 번째 비평집 <문학과 시대현실> (창비 발행)을 펴냈다. 세 번째 비평집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1995) 이후 15년 만이다. 혼돈의> 문학과>
1964년 등단 이래 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진보문학계의 대표 문인으로 활동해온 그는 “이 시대의 지배적 관념과 나의 문학적 감각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고 여겨질수록 나에게는 문학작품을 그것이 태어난 현실의 직접적 소산으로 읽는 것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말로 이번 비평집 제목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세기마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뀐 지난 15년의 격변기를 꿋꿋이 헤쳐온 원로 비평가의 사유가 오롯한 이 책은 “비록 많지 않은 독자에게일망정 내 글이 정독되기를 소망한다”는 그의 바람에 충분히 부응한다.
염씨가 지난 15년 동안 써온 글을 선별해 630여 쪽 분량으로 출간한 이번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시인 김광섭, 문학평론가 팔봉 김기진 등 작고 문인을 다룬 비평들을 모은 제1부에서는 문학평론가 겸 시인 임화(1908~1953)에 관한 두 편의 글이 눈에 띈다. 1920~30년대 카프(KAPFㆍ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대표 작가에서 일제 식민지 말기 친일 작가로 변절했고, 해방 이후에는 남조선노동당 당수 박헌영을 추종하며 월북했다가 숙청된 임화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그의 복잡한 인생 역정에 걸맞게 분분하다.
2008년 임화문학연구회를 창립해 회장을 맡고 있을 만큼 임화에 조예가 깊은 염씨는 “우리 문단의 임화관(觀)이 아직 냉전시대의 잔재와 문학주의적 편견을 제대로 씻어내지 못했다”(65쪽)며 임화의 시와 비평을 폄훼하는 입장을 경계한다. 특히 임화가 문학평론가로서 남긴 성과에 대해 “우리 근대문예비평의 건설자라는 호칭을 들어 마땅한 소수의 존재들 중의 하나”라고 높이 평가한다. “임화의 평론 활동과 신문학사 서술 및 해방 공간의 민족문학론을 제거한다면 해당 분야에 치명적인 결락이 발생한다”(69쪽)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 책의 제2부는 염씨가 자신과 동세대 작가인 시인 고은, 신경림, 고 조태일의 작품을 논한 글을 묶었다. 민주화운동의 동지이자 문학적 도반이었던 세 사람에 대한 염씨의 애정은 이들과의 인연을 소개하는 내용이 자주 눈에 띄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제각기 한국 시단에서 일가를 이룬 세 시인에 대한 염씨의 문학적 평가는 개인적 친분이 무색할 만큼 엄정해서, 이들을 다룬 다른 비평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쓴소리가 곳곳에 박혀 있다. 올해 고희를 맞은 저자의 꼬장꼬장한 비평 정신이 새삼 감탄스러운 대목이다. 이시영 이동순 김용락 박성우 등 후배 시인들의 시집에 붙인 작품 해설을 묶은 제3부는 지병을 앓으면서도 작품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그의 성실성을 보여준다.
소설가 김정한 송기숙 황석영씨 등의 작품 분석을 통해 민중문학의 정체성 수립을 시도한 제4부를 지나 제5부에서는 27년 동안 독문학 교수로 재직했던 외국문학자로서 염씨가 고민해온 주제들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주로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이 학문의 정체성을 제고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그는 때로 “모든 외국학문 연구자는 (외국에서의) 학문적 몰입의 시간이 끝난 다음, 한국학계에서 활동하기 위해 반드시 일종의 재활교육 내지 재적응훈련을 의식적으로 받아야 한다”(645쪽)는 식으로 나름의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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