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대표적 영화감독 이창동(56), 아오야마 신지(46)씨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두 사람 모두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점. 이씨는 1983년 등단해 단편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1992년 한국일보문학상을 받는 등 작가로서 명성을 얻다가 1990년대 중반 영화계에 투신했다. 아오야마씨는 1995년 첫 영화 ‘Helpless’를 발표하며 감독으로 활동하던 중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유레카’(2000)를 소설화한 작품으로 2001년 미시마 유키오 상을 받으며 문학에 입문했다. 최고 권위의 국제영화제인 칸 영화제에서 이씨가 올해 각본상(‘시’)을, 아오야마씨가 2000년 국제비평가협회상(‘유레카’)을 받은 점도 공통점이다. 이들이 서로의 영화를 높이 평가하며 즐겨 보는 사이라는 점도 마저 꼽을 수 있겠다.
두 사람이 4일 오후 일본 기타큐슈 시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인 쇼와관(昭和館)에서 만났다. 올해 처음 열리는 기타큐슈 시민영화제의 초청을 받아서다. 이 영화제는 이날 오전부터 이씨의 영화 ‘오아시스’ ‘시’, 아오야마 씨의 ‘유레카’ 등을 상영한 뒤 이들의 공개 대담을 마련했다. 전날 이 도시에서 열린 제2회 일중한 동아시아작가포럼에서 처음 만나 통음의 밤을 함께한 이들은 1939년 문을 연 쇼와관의 좁은 로비에서 팬들에 둘러싸인 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두 감독을 보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로 관람석 270석은 가득 찼다. 대담은 기타큐슈 시 출신인 아오야마 씨가 이날 상영된 ‘시’를 중심으로 이씨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됐다. “이 감독의 작품은 영화의 장르적 관습을 답습하지 않고 이야기를 만드는 특별한 시도 때문에 소설가가 만든 영화라는 느낌을 준다”는 아오야마 씨의 칭찬에 이씨는 “아오야마 감독의 영화 ‘새드 배케이션’(2007)을 보면서 기타큐슈를 처음 알았고, 이런 감독과 영화를 탄생시킨 이곳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느꼈다”고 화답했다.
이씨는 이어 ‘일본은 하와이에서 흘러온 산호초에 불과하다’는 이 영화의 대사를 언급하며 “아오야마 감독은 일본 사회의 정신을 통렬하게 밝히고 그 근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만나기 힘든 감독”이라고 평했다. 또 “영화는 우리의 삶과 세상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내 믿음이고, 그런 점에서 내 영화가 문학을 닮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아오야마 씨는 “‘시’에 나오는 시인들의 강의 장면을 보면서 진짜 시 수업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감상을 밝혔고, 이씨는 이에 대해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영화가 완성된 이후까지도 ‘시를 강의하거나 낭송하는 장면이 너무 길다’는 지적을 거듭 받을 때마다 ‘사람들이 너무 시를 안 읽으니까 영화로라도 만들어 보여주고 싶다’고 얼마간 진심이 담긴 농담으로 받아넘기곤 했다”고 답했다.
기타큐슈(일본)=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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