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별세한 리영희씨는 한국사회를 옥죄던 냉전 의식, 독재과 대결했던 진보적 언론인이자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분단과 전쟁, 정치적 권위주의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야만과 맞서 싸운 '시대의 양심'으로 존경받았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반독재투쟁과 통일운동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언론사와 대학에서 4차례 해직됐고 5차례 옥고를 치렀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한국사회에서 그의 위상을 '사상의 은사'라고 표현했다.
1929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공립공업고(현 서울공고)와 국립 해양대를 졸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군 통역장교로 입대해 7년간 복무한 뒤 육군 소령으로 예편, 합동통신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진실을 추구한 대가로 그가 평생 겪은 고초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1960년대까지 국제문제 전문기자로 활약하면서 냉전 논리 속에 은폐된 사실과 정보를 파헤친 기사로 필명을 날렸다. 탈냉전 사고에 기반한 그의 국제정세 인식과 통일관은 반공주의를 절대가치로 내세웠던 군사정권과 번번이 충돌했다.
1964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일 때 아시아아프리카 외상회의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추진한다는 기사를 썼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래, 1977년에는 저서 <8억인과의 대화>가 중국 공산당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으로 복역했고, 1989년 한겨레신문 논설고문일 때는 방북 취재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됐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1년 언론계에서 쫓겨난 그는 이듬해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로 부임했으나 이후에도 군사정권의 압력으로 1995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그는 진실을 억압하고 맹목을 강요하는 우상에 맞서는 '우상 파괴자'를 자임했다. 그가 말하는 우상은 진실을 가장한 거짓으로 권력을 행사하려는 개인과 집단, 맹목적 이념으로서의 반공주의, 성장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 등을 포함한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우상과 이성> 에서) 우상과>
<전환시대의 논리> (1974), <8억인과의 대화>(1977), <우상과 이성> (1977) 등 1970년대 그의 저서들은 냉전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한국사회, 특히 젊은 지식인과 대학생들에게 엄청난 지적 충격을 던졌다. 군사정권은 그의 저서들을 잇따라 금서로 지정했지만 <전환시대의 논리> 의 영향을 받아 '전론(轉論) 세대'가 형성됐다고 할 정도로 반향은 컸다. 전론 세대는 북한을 증오하는 반공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처음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민족 화해와 민족애의 가치를 중시한 세대를 지칭한다. 대학 시절 이 책을 읽고 지적 각성을 했다는 조희연 (54) 성공회대 교수는 "유신 교육으로 인한 냉전적 사고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지적 해방의 단비를 이 책에서 맛보았다. 유신 말기, 젊은이들이 비판의식을 세례 받는 현장에는 언제나 이 책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환시대의> 우상과> 전환시대의>
그는 이후에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1994) 등의 저술과 회고록 <대화> (2006)를 남겼다. 주한외국인협회 자유언론인상(1989), 늦봄 통일상(1999), 만해상(2000), 단재언론상(2006) 등을 수상했다. 고은 시인은 2006년 발간된 전12권의 <리영희 저작집> 서문에서 "그는 한반도 상공에 날고 있는 각성의 붕(鵬)이다. 이와 함께 그는 한반도와 한반도를 에워싼 모든 힘의 논리를 이성의 논리로 이겨내는 물질적 정화이다"라고 말했다. 리영희> 대화> 새는>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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