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한 이는 이부진 호텔신라ㆍ에버랜드 전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녀로, 40세인 그는 이번에 부사장을 건너 뛴 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과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으로 곧 바로 승진했을 뿐 아니라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까지 겸임하게 됐다.
두 살 많은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1991년 입사 이후 19년 만에 사장에 오른 데 비해 이 전무는 15년 만에 부사장을 건너 뛰어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 인사에선 전례없는 초고속 승진이다. 삼성 계열사 중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란 타이틀도 땄다. 더구나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까지 거머쥐게 된 것은 의외였다.
일단 삼성에선 이 전무의 승진 배경에 대해서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삼성의 인사 원칙이 적용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전무가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의 수익성을 개선, 사업 구조를 고도화했다는 것이 삼성 설명. 실제로 호텔신라는 이 사장이 경영에 관여하게 된 뒤 매출액이 2002년 4,157억원에서 지난해 1조2,132억원으로 늘어났다. 특히 최근 롯데면세점과의 ‘루이뷔통 유치전’에서 승리하며 세계 최초의 루이뷔통 입점 공항 면세점이라는 명성을 얻은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이 된 데 대해서도 “면세점 사업과 종합상사의 글로벌 유통에서 시너지 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무의 경영 보폭이 계속 확대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선 이 부사장과의 경쟁 구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호텔신라 경영에만 참여했던 이 전무가 지난해 삼성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에 이어 이번에는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 상 중요한 고리인 삼성물산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두 사람이 맡고 있는 회사의 매출이나 규모, 지분 등을 감안하면 전혀 현실성이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다른 삼성 관계자는“호텔신라와 에버랜드는 원래 이 전무에게 주어질 것으로 예견돼 온 만큼 자신의 몫을 찾아간 셈”이라며 “삼성물산의 경우는 규모가 큰 건설부문이 아닌 상사부문 고문을 맡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회사 분할 등을 통해 상사 부문을 가져갈 순 있겠지만 그 이상은 아직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는 “이 전무는 열정적이면서 도전적이어서 이 회장에게도 많은 건의를 하는 스타일”이라며 “다른 형제들과 달리 스스로 몫을 챙겨야 한다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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