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일이 공교롭게도 모두 4일이다.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42ㆍ중요무형문화재 제 16호 거문고 산조 이수자), 국내 유일한 생황 전문 연주자 김효영(36ㆍ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 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씨가 새 연주회에서 국악의 미래를 보여준다. 각각 국립국악원 우면당,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차세대 국악의 풍경이 펼쳐진다.
허씨의 무대 ‘ResoNation’에는 첨단 시청각 장비가, 김씨의 무대 ‘천년의 사랑’에는 음악적 동지들이 함께한다. 허씨의 관객이 인터넷을 매개로 국내외에 산재돼 있다면, 올해 5회째 독주회가 되는 김씨의 무대 풍경은 일상적이다.
공명(resonance)과 국가(nation)의 영어 단어를 합성한 허씨의 무대 제목은 그 다국적성을 암시한다. 현악4중주와 해금의 협연이 주였던 지난해 첫 무대를 잇는다. 가깝게는 토리 앙상블, 비빙, 바람곶 등 젊은 국악그룹은 물론 DJ달파란까지 협연했던 지난 10월 코펜하겐의 월드뮤직 페스티벌 워맥스(WOMAX)의 오프닝 무대와도 상통한다. 정악 ‘수제천’과 ‘이수대엽’에 근거한 창작음악 선율이 여타 월드뮤직을 제치고 앞에 섰고 그 중심에 그가 있었다.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UN 산하 NGO 와푸니프(WAFUNIF) 측의 구상으로 이뤄지는 이번 무대는 미국 작곡가 사라 위버가 작곡, 지휘, 감독을 맡았다.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실시간 동영상은 원격 지휘대인 셈이다. 연주자들의 동작에 따라 음이 발생하는 사운드 페인팅까지 곁들여질 무대는 지휘자의 원격 지시에 따른 원거리 즉흥 퍼포먼스인 셈이다.
모두 13명의 연주자가 3개 대륙에서 1시간 동안 4곡을 만들어갈 이 자리에 대해 허씨는 “사전 약속 없이, 100% 실시간 반응으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결국 누가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주법을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판가름 날, 진검 승부의 한판이라는 것이다.
허씨에게 낯선 종류의 무대는 아니다. 지난해 독주회 ‘전통 장단: 술대를 바라보는 눈’ 무대는 국악과 현대성이 융합하는 파격의 자리였다. 술대는 거문고의 현을 퉁기는 나무 막대, 눈은 실제 연주 영상을 쏠 캠코더를 가리킨다. 거기에 그가 미리 녹음해 둔 또 다른 거문고 선율까지 겹쳤다.
이번 연주는 한국 시간으로 4일 오전 11시, 뉴욕은 3일 오후 9시, 베이징은 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그리니치 표준시로는 4일 새벽 2시). 직접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은 극장 안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이 ‘사건’을 접할 수 있다. 네티즌에게는 웹 사이트(http://resonations.kaist.ac.kr)로 감상하는 길이 열려 있다. (02)747-3809
생황 연주자로서 김씨는 음반과 새로운 시도를 한 무대 등에서 이미 대중성을 확인 받았다. 지난 11월 발매돼 현재 국악 음반 인기차트 1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해금ㆍ피아노 협연의 창작국악 앨범 ‘사이의 사계 이야기’, 서울시향 현악4중주단과 협연한 ‘신수룡음’ 등 창작국악 음반들로 그는 제법 인기인이다. 자작곡 ‘천년의 사랑’ 등 6곡이 모두 초연작인 이번 무대에 또 다른 기대를 건다.
그는 생황의 적자다. 1990년대 독주 악기로서 맥이 끊겨져 있던 생황의 주법과 가락 등을 재현해 낸 손범수가 그의 스승이다. 김씨는 2006년 최초의 ‘생황 산조’(작곡 계성원)를 연주, 적통임을 입증했다. 이 곡의 완주자는 아직 그가 유일하다. 지난 3월 초연했던 생황 협주곡 ‘풍향’(작곡 이준호)은 피리 산조를 발전시킨 12분짜리 작품으로 그의 개인 연주회를 찾는 관객들에게 종종 감상의 기회가 주어진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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