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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그들이 온 이후' 인디언 후예의 절규 "콜럼버스는 나치 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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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그들이 온 이후' 인디언 후예의 절규 "콜럼버스는 나치 원조다"

입력
2010.12.0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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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 처칠 지음ㆍ황건 옮김

당대 발행ㆍ417쪽ㆍ1만9,000원

인디언 크리크족과 체로키족의 피를 반씩 물려받은 미국인 워드 처칠(63)은 토착민 권리운동가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상륙 이후 토착민들이 겪어온 피와 눈물의 역사가 지금까지 어떻게 계속되고 있는지 고발하고 투쟁을 외치며 그 선봉에 서 왔다. <그들이 온 이후> (원제 ‘From a Native Son’ㆍ1996년 초판, 2002년 개정판)도 그런 활동에 속한다.

책은 콜럼버스의 신화를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콜럼버스가 에스파뇰라 섬에 처음 상륙한 1492년 10월 12일 이후 토착민들은 절멸의 길을 걸었다. 1493년 17척의 함선을 끌고 이 섬으로 다시 돌아온 콜럼버스는 ‘카리브제도와 아메리카 본토의 부왕 겸 총독’으로서 토착민들을 노예로 만들고 체계적인 멸종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800만명에 이르던 타이노족은 그가 떠난 1500년에는 10만명 가량밖에 남지 않았다고 추산한다. 절멸 정책은 그후로도 계속되어 카리브 지역의 토착민 1,500만명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 숫자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저자는 “콜럼버스는 원조 나치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찬양하는 것은 나치의 집단학살을 찬양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규탄한다.

콜럼버스가 에스파뇰라 섬에 처음 상륙한 날을 ‘콜럼버스의 날’로 기념해 매년 대규모 축하 행진을 벌이는 미국에서 콜럼버스는 나치 원조라는 그의 주장은 격분을 샀다. 하지만 토착민들은 이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선포해 투쟁을 다짐한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보호구역에 갇히거나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채 비참하게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오늘을 거듭 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분노로 들끓는다. 1492년 이후 토착민들이 겪은 피와 눈물과 투쟁의 역사를 전하고, 오늘날 미국 문화와 교육이 토착민의 문화와 정체성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고발하고, 토착민 해방 투쟁의 원칙과 목표를 제시하는 13편의 글을 모았다. 한 편 한 편이 격문 같다. 토착민을 압살했으면서 이를 은폐한 미국의 위선, 지금도 동화정책 혹은 관리정책의 이름 아래 계속되고 있는 토착민 분열과 파괴 실태를 규탄한다.

저자는 투쟁을 촉구한다. “토착민 해방이 이뤄지지 않는 한 북미 대륙의 어떠한 혁명도 식민주의의 계속일 뿐”이라며 “만민이, 아무리 작고 원시적인 민족이라도, 민족적 생존의 형태를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민족자결권)를 갖는 토착민주의(Indigenism)”를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토착민 해방이야말로 유럽중심주의와 백인우월주의가 파괴해온 지구와 문명을 살리는 근본적인 혁명이라고 강조한다.

콜로라도대학의 아메리카인디언학과 교수이던 저자는 9ㆍ11 테러를 옹호한 에세이가 문제가 되어 2007년 해직됐다. 이 책 맨 뒤에 실린 그 글에서 그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어린이 50만명을 포함한 대량학살을 지적하며, 9ㆍ11 테러는 미국에 짓밟힌 자들의 ‘작은 앙갚음’이라고 주장했다.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 진보적 지성들이 그의 복직을 촉구했지만, 아직 그는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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