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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냉전문화론' 일본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냉전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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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냉전문화론' 일본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냉전의 기억들'

입력
2010.12.0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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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카와 데쓰시 지음ㆍ장세진 옮김

너머북스 발행ㆍ344쪽ㆍ1만9,000원

대만 작가 천잉천이 1975년 도쿄를 방문했을 때 그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전철 야마테선 요요기역 부근에 설치되어 있던 일본 공산당의 거대한 간판이었다. 한국의 휴전선과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냉전이 한창이었던 그 무렵 동아시아에서 공공연하게 공산당 간판이 내걸려 있다는 사실은 대만이나 한국의 지식인에게는 경악할 일이었다.

냉전 시절 한국과 북한, 중국과 대만은 이념에 따라 치열하게 대치했지만, 일본인들은 동아시아의 냉전구조 안에 깊숙이 자리잡은 채 살면서도 미일 안보체제가 확고해진 1955년 이후의 시기를 '전후(戰後)'라고 부르며 냉전체제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메이지대학 교수인 일본문학평론가 마루카와 데쓰시(丸川哲史ㆍ47)는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국민국가 체제가 냉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고, <냉전문화론> (2005)에서 냉전이 일본에 남긴 기억을 되찾으려 한다.

그는 일본인들이 냉전구조를 의식하지 못한 것에 대해 "냉전을 고정화시킨 최대 열전(熱戰)인 한국전쟁의 전장으로부터 일본은 단지 조금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었을 뿐이나, 그 미묘한 간격이 일본인들의 전후관(戰後觀)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 책에서 냉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1945년 이후 일본 영화와 문학에 투영된 냉전의 흔적을 살펴보고 있다.

1945년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바다 건너에서 중국혁명과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일본에서는 '전쟁과 평화' '들어라 와다쓰미의 목소리' 등의 전쟁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다. 점령 미군의 검열 하에, 휴머니즘이나 피해자로서 일본인의 감정을 북돋는 반전평화주의를 기조로 한 내용들이었다. 또 일본 경제가 한창 성장하고 있던 1960년대 영화에는 "전쟁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경박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가해성이 흘러 넘친다"는 게 저자의 평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으로는 이노우에 미쓰하루의 <병든 부분> , 김달수의 <일본의 겨울> , 고바야시 마사루의 <단층지대> 등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한국전쟁의 병참기지가 된 사세보 항을 끼고 있는 공산당 지부의 활동이 전쟁과 어떻게 관련됐는지에 집중하고 있는 <병든 부분> 을 비롯, 이 작품들은 모두 한국전쟁의 여파로 일어난 공산당 조직의 분열을 테마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당시 일본 주류문화에서 무대의 배경 혹은 풍속의 일부로서만 기억되었을 뿐이었다.

전후 일본에서는 식민지(점령지)에서 돌아온 귀환자들의 전쟁 기억이 다양하게 분출됐다. 중국은 만주사변부터 한국전쟁까지 22년 간 전쟁을 치렀는데, 이를 포착한 구로다 기오의 '죽음에 이르는 기아_안냐에 대한 고찰'이라는 시와 국제적 항만도시였던 중국 다롄에서 자란 기요오카 다카유키의 <다롄물(大連物)> 등이 그렇다. 이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전후 일본 혁명운동의 좌절이란 것도 중국혁명(및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파동이 일본인들을 움직이게 한 결과였다고 본다.

다무라 다이지로가 1947년 쓴 <??부텐(春婦傳)>은 성을 억압당했던 태평양전쟁 시기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육체문학' 중의 하나였다. 위안부가 된 조선인 하루미와 그녀를 소유물로 삼으려는 부관 나리타, 나리타의 부하인 미쓰우에 상병 간의 전장 로맨스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반발하는 하루미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영화화한 구로사와 아키라 각본의 영화 '새벽의 탈주'(1950)에서는 미군의 검열로 주인공이 위안부에서 위문가수로 바뀌고, 하루미의 입을 통해 천황을 비판했던 말도 사라진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진 1965년 스즈키 세이준이 '??부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영화화하지만 주인공을 원작 그대로 조선인으로 설정하지는 않았다. 종군 간호사와 군의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마쓰무라 야스조의 영화 '붉은 천사'(1966)는 전쟁영화의 주 테마였던 '타락한 여인'의 이미지를 반전시켰다.

저자는 냉전을 일본 국가체제의 '고향'이라고 말하면서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넓게 바라보려 한다. 이 같은 관점은 19세기 후반 서구와의 접촉 이후 탈아입구(脫亞入歐)로 치달았던 일본이 다시 아시아에 눈을 돌리고 있는 움직임의 한 단편으로 보인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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