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영 지음
프로네시스 발행ㆍ536쪽ㆍ2만2,000원
스물한 살의 '안나 O'는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기침에 시달렸고 극심한 두통에다 시력장애를 겪으며 뱀 형상의 환각을 보기도 하고, 근육 마비 증세도 보였다. 급기야 자살 기도까지.
그런데 그녀가 아팠던 까닭은 몸이 아니라 마음, 바로 죄책감 때문이었다. 효녀였던 그녀는 병든 부친을 6개월간 극진히 간호했으나 부친이 숨지자 증상이 극심해졌다. 기침이 시작된 날은 부친을 간호하던 중 옆집에서 들려온 음악 소리에 춤추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던 때였다. 그녀의 증상은 병든 아버지를 외면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한 스스로에 대한 징벌이었다.
이 여성은 프로이트(1856~1939)의 친구였던 브로이어에게 찾아온 환자로,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탄생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프로이트 이론은 지금도 '사이비 과학'이란 시비가 적지 않지만,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앓는 사람들을 치유했던 엄연한 의사였다. 그의 환자들은 '안나 O'처럼 마음의 상처로 몸이 망가진, 제각각 내밀한 사연을 깊숙이 간직한 이들이었다.
<프로이트의 환자들> 은 프로이트가 치료하고 분석했던 그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83세로 사망할 때까지 정력적인 집필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프로이트는 하루 10시간씩 환자들을 분석한 지독한 일벌레기도 했다. 그가 남긴 저서는 영문판 프로이트 전집 24권(한국어판은 17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묶였다. 프로이트의>
<프로이트의 환자들> 은 그의 전집에 등장하는 숱한 환자들에 대한 분석 사례에서 150가지를 뽑아서 정리한 것이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구체적 케이스는 복잡한 개념의 이론을 피부에 와 닿게 하는 지름길이자 그 이론이 탄생한 요람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프로이트 이론의 탁월한 입문서 역할을 하면서도 그 알짜를 집약했다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특히 정신분석학이 의식 밑바닥에 감춰진 내밀한 욕망을 읽는 학문이란 점에서 이 책에 실린 케이스는 저마다 짧은 탐정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이를테면 조카가 죽는 슬픈 꿈을 꾼 여성의 숨은 욕망은 장례식장에서 사모하는 남성을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이라는 식.
이보다 더 섬뜩하거나, 언급하기 낯뜨거운 성적 욕망에 대한 분석도 적지 않다. 질투, 원한, 의심, 증오, 분노, 좌절, 죄책감 등이 뒤얽힌 환자들의 생생한 사례는 말하자면 날것 그대로의 인간 극장이다. 책은 또 악성 종양 환자를 신경증 환자로 잘못 판단한 프로이트가 그 환자가 숨진 뒤 겪은 일시적 망각 증상 등을 소개하며 프로이트의 시행착오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김서영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정신분석학은 이론에 갇힌 학문이 아니라 일반인 모두가 성숙한 주체로 서기 위해 필요한 실천의 학문이라고 말하는 그는 "정신분석의 중심에는 개념이나 이론이 아닌 사람이 있다"고 강조한다.
성숙한 주체가 되는 길은 '너 자신을 알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김 교수는 그래서 정식분석의 키워드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거세 공포 등이 아니라 '인정'이라고 말한다. 환자들이 자신의 억압된 욕망을 이해하게 됐을 때 증상이 사라지듯이, 우리는 스스로의 진실과 대면해야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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